설 맞는 덕후들 “조카몬이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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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플라모델-LP판 등 애장품, 망가뜨리고… 가져가고… 속앓이
친구집에 옮기거나 싼 선물로 방어

지난해 1월 한 누리꾼이 조카들이 자신의 피겨를 망가뜨렸다며 네이버 카페 ‘액션 피겨’에 올린 사진.

네이버 카페 액션 피겨 캡처
지난해 1월 한 누리꾼이 조카들이 자신의 피겨를 망가뜨렸다며 네이버 카페 ‘액션 피겨’에 올린 사진. 네이버 카페 액션 피겨 캡처
‘조카몬’. 조카와 몬스터의 합성어로, 말썽꾸러기 조카나 어린 사촌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플라모델 조립, 피겨(피규어) 수집 등 이색적인 취미를 즐기는 ‘덕후’들 사이에서 자주 쓰인다. 이들은 명절에 찾아오는 조카나 사촌동생들이 자신이 아끼는 소장품을 망가뜨리거나 가져갈까 봐 마음을 졸인다고 한다.

오죽 속이 상하면 어린 조카를 몬스터에 비유할까. 괜한 오해를 받거나 빈축을 살까 봐 털어놓지 못했던 이들의 ‘명절 조카몬 공포’를 들어봤다.

○ 조카몬 공습에 떠는 어른들

건담 플라모델을 모으는 게 취미인 직장인 오현주 씨(32)에게 명절은 쓰라린 기억뿐이다. 지난해 설 사촌동생들은 오 씨가 아끼던 건담을 처참하게 부수고 말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건담은 다시 조립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4년 전 추석에는 23만 원짜리 건담을 잃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 모델로, 오 씨와 같은 건담 마니아들에게는 ‘드림카’와 같은 존재였다. 오 씨가 모은 건담 중에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모델이 수두룩하지만 어린 사촌동생들에게는 그저 갖고 놀다 망가뜨릴 수도 있는 장난감일 뿐이었다.

가수 H.O.T.의 ‘광팬’이었던 강혜경 씨(32·여)는 수년간 콘서트를 따라다니며 야광봉을 수집했다. 콘서트 때마다 달리 제작되는 야광봉은 H.O.T.에 대한 추억이자 기록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명절 때 사촌동생들이 집에 놀러 오면서 강 씨의 귀중한 추억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술봉이라도 되는 것처럼 야광봉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약한 재질의 야광봉은 사촌동생들의 거친 손을 감당하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강 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때마다 속으로 삭여야 했다. 화를 냈다간 친척 어른들에게 ‘속 좁은 사촌누나’로 찍힐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직 동생들이 어려서 그런 거라 화를 낼 수도 없고 참담할 뿐입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덕후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조카몬에게 당한 피해 경험담이 수두룩하다. LP판 수집이 취미인 한 20대 남성은 오디오 관련 커뮤니티에 “지난해 집에 놀러온 사촌동생들이 내가 없는 사이 김현석, 김광석, 퀸, 이글스 등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LP판을 던지고 놀면서 모두 망가뜨렸다”고 털어놨다.

○ 소장품 지키는 노하우 공유하기도

일부 덕후들은 이런 피해를 미리 막고자 대비책을 세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얼마 전 네이버 카페 ‘액션 피겨’에는 “조카몬 방지 아크릴판을 제작했다”며 피겨들이 진열된 선반 입구를 투명 아크릴판으로 막아 놓은 ‘인증샷’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는 구체적인 제작 방법을 묻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조카들의 주의를 끌 만한 값싼 선물을 미리 준비하는 방법도 있다. 오현주 씨는 2일 한 플라모델 전문 판매점에서 사촌동생들에게 줄 3000원짜리 건담을 샀다. 이른바 ‘제물템’(제물+아이템의 합성어)이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한기재 기자
#덕후#마니아#조카몬#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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