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줄, 술 한잔… ‘책바’ 아시나요

강홍구기자 입력 2015-10-16 03:00수정 2015-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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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이색공간 늘어
12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책바(ChaegBar)에서 한 여성 손님이 술잔을 든 채 책을 읽고 있다. 책장 속 ‘술이 등장하는 책’ 코너에는 책과 함께 책 속에 등장하는 술이 진열돼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마시다 만 한 잔의 압생트. 저는 그 영원히 보상받지 못할 것 같은 상실감을 혼자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12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책바(ChaegBar).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는 바’라는 공간 콘셉트에 맞게 메뉴판에는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실격’ 속의 이 문장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향쑥, 살구씨 등을 주된 향료로 사용해 만드는 술 ‘압생트(Absinthe)’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오후 10시경 책 한 권을 들고 온 20대 남성은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술을 주문하고는 가게 구석에 있는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를 제외한 테이블에는 책을 읽을 수 있게끔 스탠드 조명이 마련돼 있었다. 그는 싱글몰트 위스키 2잔을 마시며 홀로 2시간여 책을 읽었다.

술을 마시며 책을 읽는 이색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독서를 즐기는 이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며 책을 읽으려는 이들 또한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루 업무를 마친 20, 30대 직장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이 같은 이색 공간들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서교동 등 젊은 세대의 왕래가 잦은 곳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책바는 주택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했다. 15평 남짓한 공간에 바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로만 운영하고 있다. 수익을 위해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고객들이 편하게 책을 읽게끔 테이블 간격에도 신경을 썼다. 1인용 테이블은 5개가 전부다. 바에서 책을 구입하고 또 다른 손님이 기부한 책을 대여할 수 있는 것 또한 다른 바와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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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을 배가하기 위한 여러 노력도 눈에 띈다. 메뉴판에는 해당 술이 등장하는 책 속 문장을 옮겼고 책에 나온 대로 칵테일 레시피를 정하기도 했다. 일례로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속 ‘진과 로즈사(社)의 라임주스 반씩 그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는 문장대로 칵테일 김렛을 만드는 식이다. 2년여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책바를 연 사장 정인성 씨(29)는 “마치 손님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즐거움을 느끼게끔 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손님은 20, 30대 직장인이 대다수다. 12일 책바에서 만난 직장인 조진아 씨(30·여)는 “퇴근 후 혼자 여유롭게 술을 마실 생각을 종종하지만 일반 바는 선뜻 혼자 가기 쉽지 않다”며 “편하게 책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오다 보니 문턱도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책바와 달리 기존 북 카페, 서점에서 술을 파는 가게는 이미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서울 마포구의 ‘퇴근길 책 한잔’은 서점에서 병맥주를 사서 마실 수 있으며 같은 구의 ‘여행자’, ‘비플러스’ 등은 북 카페의 메뉴에 술을 추가한 식이다. 비플러스는 해가 지면 가게 조명을 30% 정도 낮추고 반대로 음악 볼륨을 높여 이른바 ‘술맛 나는 분위기’를 내고 있다. 벽면을 따라 설치된 책장의 책은 정치, 사회과학, 한국소설 등 종류별로 분류돼 있었다. 2010년부터 비플러스를 운영하는 김진아 사장(45·여)은 “주말 오후 2, 3시가 되면 맥주와 함께 책을 읽으려는 이들로 만석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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