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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헉, 쓰레기에 묻은 DNA만으로 무단투기 용의자 몽타주를?

입력 2015-09-11 03:00업데이트 2015-09-1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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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 ‘DNA 표현형 분석’이 뜬다
최근 홍콩에는 쓰레기에서 수집한 DNA를 분석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의 눈동자 색과 피부색, 얼굴 형태 등을 추정한 포스터가 걸렸다. 홍콩클린업 제공
DNA 정보에서 눈과 머리카락, 피부색 등 외형을 분석할 수 있는 ‘DNA 표현형 분석 기술’이 개발되면서 미궁에 빠진 범죄 수사에 활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펜실베이니아대 제공
최근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개정 형사소송법)’이 발효되면서 미제 살인사건 273건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용의자 색출에 기대를 거는 건 그 사이 급격히 발전한 과학수사의 위력이 크다. 과학수사 기법은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DNA 한 조각으로 용의자의 얼굴을 재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로 6월 홍콩에서는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한 조치로 쓰레기에서 확보한 DNA에서 눈동자와 피부색, 얼굴 모양 등을 알아낸 뒤 용의자의 3차원 몽타주를 공개했다. 이는 DNA에서 사람의 외형을 예측하는 ‘DNA 표현형 분석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기존의 유전자 감식은 샘플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나야만 용의자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DNA 표현형 분석 기술은 범죄 현장에서 얻은 DNA에서 용의자의 모습을 바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 눈 머리카락 피부색 예측 시스템 개발돼

2011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3세 여자아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4년이 지났지만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올해 1월 미국 경찰은 DNA 표현형 분석 기술을 적용해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용의자가 유럽인일 확률이 95%이며, 눈동자는 푸른색 또는 중간색일 확률이 95%라고 밝혔다. 또 머리카락 색은 94% 확률로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DNA에서 가장 먼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색이다. 2007년 눈 색깔에 관련된 유전자에서 차이를 구분 짓는 단일염기서열(SNP)이 확인돼 파란색 눈은 90%, 갈색 눈은 60%의 정확도로 예측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지금은 평균 정확도가 90%에 이르는 눈 색깔 예측 시스템 ‘이리스플렉스(IrisPlex)’가 사용되고 있다.

머리카락 색깔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 2013년 붉은색 머리카락은 80%, 검은색은 87.5%, 금발은 69.5%까지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인 ‘히리스플렉스(HIrisPlex)’가 개발됐다. 영국 레스터대 연구진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15세기 영국 왕 리처드 3세가 푸른 눈에 금발이었을 거라고 예측했는데, 초상화와 일치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피부색은 백인을 98.3%, 흑인 92.7%, 중간 피부색 83.7%로 구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 나이 키 얼굴형은 연구 단계

나이는 수사에 매우 유용한 정보지만 예측 시스템까지는 개발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세포(T세포)가 감소한다는 점과 이를 만드는 유전자의 변화를 분석해 20세 단위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2010년 발표됐으며, 최근에는 나이가 어린 용의자를 가려낼 때 활용할 수 있는 DNA 메틸화 부위를 발견해 정확도를 확인하고 있다.

키를 알아내는 유전자 정보도 부족한 상태다. 국제 공동연구단 ‘자이언트(GIANT)’가 18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키에 대한 유전자 부위 180개를 발견했지만 이걸로는 키에 대해 10%만 설명이 가능했다. 현재는 SNP 697개를 이용해 키를 예측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얼굴형 분석도 갈 길이 멀다. 2012년 유럽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얼굴 길이와 관련된 유전자 5개를 확인했으며 2014년에는 SNP 24개를 확인한 정도다. 이 밖에 탈모나 대머리, 곱슬머리 등을 구분하는 연구도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 6·25 전사자 신원 확인에도 활용

연구 성과가 확보되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 의대에서 포렌식분자생물학과장을 맡고 있는 만프레트 카이서르 교수는 “어릴 때 금발인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 색이 점점 짙어진다”며 “DNA 표현형 분석 기술의 정확도를 높인다 해도 나이에 따라 외형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변수”라고 밝혔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DNA 사용과 관련된 법이 유전자 감식 정도에 그치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연구가 걸음마 단계다. 오범석 경희대 의대 교수팀이 2013년 한국인의 눈과 머리카락을 구분 짓는 SNP 10개를 확인했으며, 김욱 단국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민족 식별을 위한 DNA 분석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서양에 비해 한국인은 머리카락 색이나 피부색이 비슷해 DNA 표현형 분석이 쉽지 않다”면서도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인종이나 신원을 확인하는 등 활용도를 넓히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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