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이희호 외면한 김정은… 南南 갈등 노림수

우경임기자 입력 2015-08-10 03:00수정 2015-08-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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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여사 직접 초청하고도 면담안해… 남북관계 ‘내 갈 길 가겠다’ 의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3박 4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8일 귀국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지 못했다. 이날 낮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 여사는 “(남북 1차 정상회담의) 6·15 정신을 기리며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힌 뒤 서둘러 공항을 떠났다. 동행한 방북단의 표정은 착잡했다.

이번 방북은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내년 좋은 계절에 꼭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 성사된 것이다. 그래서 방북단은 내심 면담이 성사될 것이라 기대했다.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는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순안공항 영접부터 마중까지 모든 일정을 수행했고 환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여사가 만난 최고위급 인사가 차관급이었던 셈이다. 방문 첫날인 5일 맹 부위원장은 김정은과의 만남이 없을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그는 김정은을 대신해 “이희호 여사님은 선대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6·15선언을 하신 고결한 분이기에 정성껏 편히 모시라고 말했다”고 전했을 뿐이다.

김정은의 메시지도 없었고,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같은 중량감 있는 인사의 영접도 없었다. 결국 김정은이 아흔이 넘은 이 여사를 직접 초청하고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홀대 논란’도 나온다. 이 여사는 이런 반응을 의식한 듯 8일 “민간 신분인 저는 이번 방북에 어떤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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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 불발은 김정은의 다음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방향타로 보인다. 우선 김정은이 당분간 남북관계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계기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나선다면 남북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17일부터 이달 말까지 이어질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 군사훈련에도 북측은 민감하다.

과거 북한이 남북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와 겹친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져 인도적 대북 지원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은 “2011년 김정일 조문 당시와 비교해 평양에 주상복합 같은 고층 건물도 늘고, 휴대전화 사용도 자유로웠다”고 활기찬 평양 표정을 전했다.

김정은이 홀대 논란을 통해 남남(南南) 갈등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민간 차원의 방북이라고 미리 선을 그었기 때문에 북한의 푸대접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9일 “당초 면담 성사 가능성이 낮았다”고 반박했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가 민간 차원의 방북이라 강조하고, 정치인 방북을 배제하면서 방북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개인의 방북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3일 이 여사를 직접 찾아가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정부도 곤혹스러운 처지다. 하반기 남북관계 개선의 호재가 물 건너감에 따라 광복 70주년을 앞둔 정부의 운신의 폭도 더욱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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