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지으려 버너 켜면 한증막… 차라리 굶어”

유근형기자 , 강성휘 인턴기자 입력 2015-08-10 03:00수정 2015-08-1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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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염 힘겨운 이웃들 2題… 쪽방촌 홀몸 어르신들
생활비 부족해 냉방 엄두 못내 지하철 등 하루종일 떠돌아
밤에도 방안은 30도… 아예 ‘노숙’도
정모 씨가 비좁고 더운 쪽방에서 TV를 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더워 죽으나 배고파 죽으나….”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홀로 사는 정모 씨(68)는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거의 아침밥을 거른다. 성인 남성 1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공간에 TV와 냉장고가 시종일관 열기를 뿜다 보니 방은 찜통과 다름없다.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바람조차도 뜨겁다. 그런데 밥을 짓기 위해 버너까지 켜면 그야말로 한증막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을 거르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한 달 사이 체중이 2kg이나 빠졌다. 협심증과 기관지염, 당뇨,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그는 기자가 보는 앞에서 빈속에 알약 12개를 털어 넣었다. 속이 쓰릴까 봐 연거푸 물을 마셔 댔다.

이번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8일까지 7명. 이 같은 소식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폭염과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이다. 7일 만난 쪽방촌 홀몸 노인 정 씨는 더위와의 사투에 많이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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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이른바 ‘방랑파’다.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떠돌아다닌다. 매일 오전 9시에 쪽방을 나가 오후 7시에 돌아온다. 쪽방촌에서는 방랑파 외에도 쪽방을 두고 밖에서 생활하는 ‘노숙파’, 쪽방촌 입구 그늘에 모여 술을 마시는 ‘소주파’ 등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지하철은 정 씨가 가장 좋아하는 피서지. 쪽방을 나선 그는 이날도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역으로 향했다. 여기서 소요산역과 오산역을 오가면 적어도 4시간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밤새 더위 때문에 못 잔 잠을 지하철에서 잔다.

정 씨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50만 원이 전부. 쪽방 월세 24만 원과 오른 담뱃값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돈이 아까워 저녁밥은 직접 해 먹었다. 하지만 폭염이 시작된 후로 저녁밥을 사 먹는다. 종로3가 인근 식당이 그의 단골집이다. 2000원이면 백반 정식에 시원한 오이냉국도 먹을 수 있다.

방랑을 끝내고 쪽방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50분. 바깥 기온은 29도지만 쪽방은 여전히 33도. 오후 9시에도 쪽방 온도는 30도가 넘었다. 정 씨는 냉수마찰을 하고 방에 누웠지만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강성휘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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