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경제민주화…’ 책 낸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동아일보 입력 2014-04-14 03:00수정 2014-04-15 08:1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연봉 1억 받으면서 계급갈등 부추기는 지식인들 많아”
허화평 이사장은 권력 창출부터 기획에 이르기까지 5공 권력의 핵심에서 일했다. 원칙과 소신을 버리지 않는 몇 안되는 5공 인사로 꼽힌다. 10년 넘게 집필과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현 정부의 규제 완화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원칙과 철학으로 무장돼야 어려운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77)이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다’(기파랑)란 책을 펴냈다. ‘5공 정권을 설계한 플래너’로 잘 알려진 그는 1982년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으로 일하다 이철희 장영자 사건의 원칙적 처리를 주장하다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5년간 머물고 돌아왔다.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중간에 5공 정권을 심판하는 재판으로 옥고도 치렀다. 정치권을 떠난 뒤에는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지도력의 위기’(2002) 등 세 권의 정치 철학서를 펴낸 바 있으나 이번 책은 내용이나 제목 면에서 가장 도발적이라 할 만하다. 표지에 ‘임현진 김종인 백낙청 송호근 주장의 허구’라고 아예 이름을 적시한 부제를 단 뒤 이들 4명이 ‘달콤하고 향긋한 대중 영합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정책으로 권력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대표적 지식인들’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에 대해서도 ‘국내 학계에서 언론을 통해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를 가장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의 글은 너무 선동적이어서 대학 캠퍼스나 거리에 뿌려지는 운동권 유인물 수준’이라고 말한다. 허 이사장은 이런 주장의 근거들로 해당 인물들이 그동안 발표해온 다양한 논문과 칼럼 등을 대거 인용한 뒤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기자는 그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논쟁이 없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던진 내용들은 충분히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고 판단해 우선 그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10일 그의 효자동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달콤한 말로 국민 속이는 정치인들

―책 내용이나 제목이 꽤 도발적이다.

관련기사
“지금 한국 사회는 학자와 지식인들이 정치인들의 들러리가 되어 정치인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실 참여 학자들은 권력 주체가 되지는 않지만 권력 주변을 감싸고돌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이념적 노선 선택과 정책 결정을 좌우한다. 2012년 대선 때에도 각 캠프에 몰려든 교수가 5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들 중에는 증오와 계급갈등을 부추기며 사실을 호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4명의 전·현직 교수를 거론했는데….

“책에 자세히 썼지만 예를 들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임현진 교수가 황해문화(2005년) 여름호에 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근대의 향방’이란 글을 보자.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는 한국 근대화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닌 비판을 위해 발생지 남미에서조차 입증되지 못한 퇴색된 이론을 끌어들여 조국 근대화를 욕보인다. 또 우리가 세계화를 맹종하다 보면 서구화 내지 미국화의 길을 걸어 ‘사이비 근대(近代)’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는데 21세기 흐름을 거부하는 공허한 주장이다. 김종인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내세운 경제민주화론도 따지고 보면 자신만이 상상하는 평등주의 체제를 한국 사회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 속칭 재미(?)를 본 것 아닌가.

“국민 다수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을 한 뒤 선택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달콤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경제민주화’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관료들 머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그런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우리가 시장 만능주의로 재벌 공화국이 됐으며 보편복지를 위해 정부가 시장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큰 정부 작은 시장’을 지향하는 거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줄·푸·세’ 공약은 ‘작은 정부’ 공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 돌연 ‘경제민주화’로 돌아선 데에는 당시 후보를 보좌했던 학자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떻든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지만 결국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이 공약을 철회했다.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해는 한다. 실제 나라 운영을 맡고 보니 당장 급한 문제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규제철폐 끝장토론까지 한 것도 결국 정부 개입을 줄이고 자유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했던 것이고 답답한 마음에 장관들 모아놓고 다그치기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본다.”

그가 겨눈 비판의 화살은 여당과 정부로 이어졌다.

“우리가 정치세력을 평가할 때는 이념과 경제정책을 놓고 하는데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몰아치면서 부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여당은 경제정책에서 좌측 노선으로 가 버렸다. 새누리당 내 소위 ‘얼치기 우파’들은 증세를 하자고 덤볐고 대통령은 복지 재원을 마련한다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란 게 결국 국세청이 칼을 휘둘러 기업들이 세무조사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을 만든 거 아닌가. 현 정부는 한쪽에서는 국세청, 공정위가 칼을 휘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인들 모아놓고 투자해달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을 해왔다.”

그는 그러면서 “규제 완화는 호텔을 자유롭게 짓는다든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한다든지 하는 것을 넘어서는 훨씬 본질적인 문제와 닿아 있다”고 했다.

“첫째, 우리가 어떤 정부, 체제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철학이 담긴 문제다. ‘큰 정부 작은 시장’이냐 ‘작은 정부 큰 시장’이냐 하는 문제 말이다. 당연히 후자로 가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민(民) 주도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한다지만 사실은 ‘관치(官治) 시장경제’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개발정책은 사회주의 못지않은 적극적인 국가통제 경제 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개발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관치를 풀자, 풀자 했지만 한발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에 보편복지까지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이다. 이는 한마디로 관(官) 주도를 더 강화하자는 이야기다.”
격차를 이념문제로 삼지는 말아야

―‘경제민주화’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양극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데….

“나는 ‘양극화’라는 말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한다. 계급투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것과 관계되는 말인데 여기에 우파가 놀아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극화가 아니라 ‘빈부 격차’이다. 빈부 격차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연봉 1억 원이 넘는 대학교수들까지 나서 한국 사회가 ‘1 대 99’라면서 국가가 책임지라고 말하는데 ‘1 대 99라는 정확한 데이터가 있나’라고 묻고 싶다. 우리 사회는 중산층이 64%인 사회다.”

―그렇다면 격차를 해소할 노력조차 필요 없다는 말인가.

“격차를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격차를 이념 문제로 삼아 부자들을 손가락질하며 증오심을 부추기지 말자는 거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복지정책과 사회안전망 정책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긴 우리 사회에 양극화가 실재하는 곳이 있긴 있다.”

기자가 말 대신에 눈으로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조세정책과 정치현장이다. 우리는 소득 상위 1%가 총 소득세액의 46%를 부담한다. 소득이 있으면서도 세금 하나도 안 내는 사람이 36%다. 우리의 조세정책이야말로 1 대 99에 가깝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과 정치권력 실세들이 권한 행사와 영향력 행사를 독점한다. 유권자들은 단지 투표권 행사만 한다.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다.”

―재산의 거의 전부를 기부하는 미국 기업인들에 비하면 우리 부자들은 너무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조세정책과 관계있다. 미국에서는 조세정책으로 기부를 장려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기업을 경영하는가가 아니라 기업의 유지 영속이다. 기업이 오래가야 세금도 오래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속은 자유롭게 하되 법인세를 많이 걷는다. 어떻든 미국 부자들의 기부문화는 정책과 문화의 문제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서서히 이 방향으로 가리라고 본다.”

―우리랑 미국은 문화가 다르다. 평등주의가 강하고 자유주의 체제도 서양에서 나온 것이고.

“개인이나 국가나 선생과 롤 모델이 필요하다. 예외는 없다. 프랑스가 지금처럼 예술의 중심지가 된 것도 철저히 로마 예술을 카피(copy)해서 가능했다. 미국도 네덜란드 체제를 많이 모방했다. 우리는 조선왕조, 식민 시대를 거쳐 해방과 함께 갑자기 자유민주 체제가 들어왔다. 사상적 이론적 바탕도 약하고 남의 것을 제대로 모방할 생각도 안 해왔다. 그래서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온 거다. 자유주의 체제 국가에서는 자유와 평등 중 자유가 먼저다. 평등은 정치에서는 법 앞에 평등이고 경제에선 기회의 평등이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럽고 어떤 점에선 평등이라는 가치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는 책에서도 그랬지만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종횡무진하는 논리가 탄탄했다. 다시 작은 정부 이야기로 돌아왔다.
작고 강한 정부로 가자

―‘작은 정부’라고 할 때 ‘작다’는 기준은 뭔가.

“크고 작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산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간단하게 정의를 한다면 정부 권한은 최소화하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형태다. 지금 정부 부처 중 없애고 줄여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개인가. 외곽 위원회들부터 없애야 한다. ‘동반성장위원회’ 같은 것이 왜 필요한가. 또 정당 연구소까지 왜 국민 세금을 쓰나. 규제가 늘고 법이 많으면 득 보는 사람은 허가권을 쥔 관료와 분쟁 해결을 하는 판검사 변호사들이다. 불편과 세금을 감내해야 하는 측은 일반 국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5공 정권의 틀을 만든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5공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상황에서 그에게는 ‘5공 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추징금 미납을 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보니 5공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아직은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서 돌아와 5공 때 참여했던 걸 생각하게 됐고 정치 현장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목표 달성은 못 했지만 유감은 없다. 미국 체류가 큰 공부가 됐다. 5년 동안 있으면서 세계 흐름을 알게 됐고.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 흐름과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5공 너희가 자유를 말할 자격 있어? 민주주의는 너희와 관련 없잖아?’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5공 주역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결코 부정한 바 없으며 민주화가 필연임을 전제로 한 위기관리 정권이었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평화적 정권 이양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그리고 난 한 번도 과거의 책임에 대해 회피한 적 없다. 5공에 대해 정치 보복적 단죄는 내려졌으나 역사적 평가는 미래 과제로 남아 있다.”

갈등과 불통만 있지 논쟁과 합의가 없는 한국사회에서 그가 던진 주장들이 소통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