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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막가는 美軍… 시민에 ‘총’쏘고 검문경찰 차로 치고 뺑소니

입력 2013-03-04 03:00업데이트 2013-03-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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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서울도심서 시속 170km 심야 추격전
심야에 서울 도심에서 행인들에게 장난감으로 보이는 총을 쏘아대던 주한미군 3명이 출동한 경찰과 시민을 차로 밀치고 달아났다. 이들은 추격하는 경찰과 도심에서 초고속 추격전을 벌이고 경찰을 차로 치는 등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들다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광란의 도주…긴박한 추격

2일 오후 11시 53분경 “용산구 이태원역 2번 출구 할리스커피 매장 앞에서 미군이 새총이나 공기총을 시민들을 향해 쏘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곽광근 경장 등 출동한 경찰 2명은 커피 매장 앞에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는 옵티마 승용차 안에 딕슨 리처드 베커 일병 등 미국인 남자 2명과 미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1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다. 미군들은 경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차 앞을 붙잡고 있던 곽 경장을 차로 밀치며 달아났다.

미군이 모는 차가 보광동 방면으로 좌회전하자 곽 경장은 3단봉으로 차 앞 창문을 내리쳤다. 삼단봉이 부러지고 유리창은 박살났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함께 차의 도주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미군 차량은 이태원역 삼거리에서 보광동 방면으로 달아나려다 도로가 다른 차들로 막혀 있자 유턴해서 녹사평역 방면으로 향했다. 미군 차량은 유턴하는 과정에서 다른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았다. 차의 도주를 막던 시민들도 넘어지며 다쳤다.

미군 차량이 달아나자 근처에 있던 택시운전사 최모 씨(38)가 뒤쫓았다. 경찰은 사건 장소가 이태원지구대 근처라 순찰차 없이 출동했고 도로도 아수라장이 돼 바로 뒤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 씨는 커피매장에서 약 400m 떨어진 노스페이스 매장 앞에 임성묵 순경(30)이 보이자 차를 세우고 “앞에 도망가는 옵티마 차가 경찰과 시민을 치고 달아나고 있다”며 옆좌석에 태웠다. 임 순경은 ‘외국인이 현금지급기 부스 안에 갇혀있다’는 신고를 받고 사건을 처리 중이었다.

그 후 경찰과 미군의 차량 추격전이 13분간 벌어졌다. 택시가 두무개길에서는 최고 시속 170km로 쫓았지만 따라잡지 못할 만큼 미군 차량은 광란의 질주를 했다. 미군 차량은 신호를 무시했고, 수시로 불법 유턴을 했다. 성수역 부근 골목에서 미군 차량을 놓쳤지만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시민이 차가 도망간 방향을 알려줬다. 최 씨와 임 순경은 성수사거리 인근 막다른 골목에 미군 차량이 진로가 막힌 채 멈춰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차량 운전석 쪽으로 간 임 순경은 미군 차량 보닛에 손을 올리고 “멈춰”라고 반복해 외쳤지만 미군 차량은 굉음을 내며 후진했다. 임 순경은 하늘을 향해 공포탄 한 발을 쐈다. 미군은 앞으로 갔다가 두 번 더 임 순경을 향해 후진했다. 그러자 임 순경은 38구경 권총 실탄 1발을 차량 왼쪽 바퀴에 쐈다. 그러고는 다시 후진하는 차량을 향해 실탄 2발을 더 쐈다.

임 순경의 목숨을 건 저지에도 미군 차량은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차량은 임 순경의 왼쪽 발을 밟고 지나갔다. 쓰러진 임 순경이 일어나 최 씨와 함께 뒤쫓았지만 도주차량은 사라져버렸다.

달아난 미군들은 3일 오전 1시 3분경 미8군 용산기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한미군은 베커 일병이 왼쪽 어깨를 유탄에 맞아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 “행인에게 장난감 총 발사”

경찰은 베커 일병 등이 커피 매장 앞에서 사용한 총이 장난감 총(비비탄총·Ball Bullet)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사건 장소 주변에서 비비탄이 다량 발견됐기 때문이다. 인근 시민도 “비비탄총에 맞았다”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까지 서울 용산경찰서로 미군의 난동으로 시민 2명이 부상당하고 차량 4대가 손상을 입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아직 접수되지 않은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옵티마 차량 번호를 조회해 차량 주인인 로페즈 크리스천 하사와 그의 부인을 소환 조사했다. 두 사람은 3일 오전 9시에 경찰에서 한 시간가량 조사받았다.

경찰은 “크리스천 하사와 그의 부인이 사건 당시 옵티마 차량에 베커 일병과 함께 있던 남녀인 것으로 보고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미군 대표부와 통역, 미군범죄수사대(CID)가 입회해야 하는데 CID만 동행해 정식 조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 하사 등은 경찰에서 한국 경찰을 차로 치고 도망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천 하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아랍인이 총을 쏘고 차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는 것. 베커 일병도 미 헌병대에 같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신은 경찰이 아닌 아랍인에게 총을 맞은 것이며 차를 빼앗긴 이후 일은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경찰서는 정확한 수사를 위해 CID와 협조해 베커 일병 등을 4일 오전 중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소환할 예정이다. 베커 일병이 치료를 이유로 조사에 불응하면 직접 부대로 찾아가 조사할 계획이다.

○ 미8군 부사령관 용산署 사과 방문

한편 크리스 젠트리 주한 미8군 부사령관은 3일 오후 1시 55분경 용산경찰서를 찾아 “어제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부상당한 베커 일병은 미 육군병원에서 안정적인 상태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과 추격전을 벌인 임 순경은 추격전 뒤 순천향대병원에서 1시간가량 치료받고 퇴원했지만 왼쪽 다리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임 순경은 사건 직후 지구대로 복귀한 뒤 동료들에게 “실탄을 발사한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고 동행했던 최 씨가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에선 경찰 요구에 불응하는 용의자를 죄질에 따라 헬기까지 투입해 추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번 사건처럼 경찰을 향해 차를 몰아 충돌한 경우는 공권력에 대한 공격으로 판단하고 조준 사격까지 할 수 있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엄격한 규제 탓에 총기 사용의 결과를 우려해 위축되는 한국 경찰과 달리 미국에선 매뉴얼만 준수했다면 책임을 묻지 않아 경찰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일·김성모·김호경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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