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이산가족 한 해결해주지 못한 것은 남북 모두의 잘못”

뉴시스 입력 2019-09-13 14:20수정 2019-09-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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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 많은 발전 필요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우선"
"상시·화상상봉, 고향방문 등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남북 사이에) 다른 일들은 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도주의적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KBS 추석특별기획 ‘2019 만남의 강은 흐른다’에 출연해 “지금 이산이 70년인데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산가족의 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준다는 것은 그냥 우리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하지만 우선 이산가족이 만나게 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며 “우선 지금까지 해오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라도 더 자주 열려야 하고, 더 큰 규모로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 이제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화상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상설 면회소로 만나기도 하고, 나아가서 좀 적어도 고향 방문 정도는 자유롭게 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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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사실 처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했고 두 사람 사이에선 공감을 했다”며 “그래서 우선 상봉행사를 하는 것으로 발표했는데,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들에게 “여러가지 긴 세월 기다리시느라 안타깝겠지만 어쨌든 빠른 시일 내에 상봉행사도 늘려나가고 상시상봉, 화상상봉, 고향방문, 성묘 이런 것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산가족 여러분 꼭 희망 가져주시고 또 정부의 뜻에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방송에 출연해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가족사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추석 때 전 민족적으로 고향을 찾아서 대이동을 하는데,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며 “우리는 그렇게 찾아갈 고향이라는 곳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도 없고, 외가집도 없고, 명절이 되면 오히려 우리로선 잃어버린 고향, 부모님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기회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흥남철수) 당시 거제도 주민 수가 10만명쯤 됐다. 그런데 흥남에서 내려간 분만 9만1000명, 다른 경로로 피난온 분을 합치면 전체 피난민이 15만명 정도 됐다”며 “섬 주민보다 많은 피난민이 몰렸는데 거제 주민들이 그 많은 피난민을 다 품어주고 먹여살려줬다. 피난민 일행은 취사 도구조차 없을 땐데 솥단지, 냄비를 제공해주고 식량도 나눠줬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전쟁통에 피난온 분들은 허겁지겁 다 두고 내려왔기 때문에 생활기반이 없어서 고생한 분들이 많다”며 “우리 부모님도 북에 있을 땐 꽤 괜찮은 집안에서 많이 배운 분들이었고, 아버님은 해방 후에도 흥남시청에서 농업 담당 계장을 하셨던 분이었는데 피난을 내려와선 모든 삶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석했던 것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원래 상봉 신청을 노태우 정부때 받았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제일 먼저 부산 영도구청에 가서 신청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쪽 상봉 신청은 순서가 오지 않았고, 한번도 당첨이 안 됐고, 이모님이 북에서 신청한 게 선정됐다. 상봉행사는 (참여정부 때) 시민사회수석으로 복귀한 이후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어머니가 6남매의 맏이였고, 이모님은 맨 막내다. 이모라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시집온 이후에 태어나 갓난아기때 몇 번 본적 있을 뿐 같이 자라거나 생활한 경험은 없었다. 처음에 이모가 오시는데 정작 우리 어머니는 금방 알아보시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척 보니까 우리 이모님인지 알았다. 우리 어머니 그 시절 그 연세 때랑 똑같은 것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후속으로 서로 연락할 수 있는 게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헤어진 게 마지막이었다. 워낙 상봉을기다리는 분들이 많으니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오는 건 어렵다”며 “지금 같이 상봉행사가 1년에 한두 번 되는 식이라면 앞으로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가 이모님은 만나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흥남시의 옛날 살던 곳, 또는 어머니 외가집, 이런 쪽에 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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