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승길]통상임금 판결, 기업 현실과 취약계층도 고려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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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상식적인 법은 사회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규범이다. 이러한 법의 이념은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에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법의 이념적 가치가 통상임금 건에서 크게 동요하고 있다.

최근의 통상임금 소송은 핵폭탄급이다.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단, 노사합의 효력에 관한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信義則)에 위배돼 통상임금을 확대하는 청구를 제한하는 판단 기준을 최초로 선고했다. 산업 현장에서 노사합의와 관행을 최대한 존중해 통상임금 산정과 관련된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자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하급심 재판부의 원칙 없는 신의칙 적용으로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기업들이 1심에서 신의칙을 부정했다가 2심에서 돌연 인정하는 등 일관성 없는 판결로 혼란스럽다.

조만간 통상임금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기아자동차 건의 경우, 과거 총액 기준에 따라 매년 5% 전후의 임금을 인상해 온 결과 연봉이 완성차 업계 중 최고 수준이다. 기아자동차 근로자는 9600만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번 소송에서 과거의 임금 인상분은 그대로 인정하고, 정기상여금 750%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추가로 1인당 1억1000만 원을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대표 소송(2만8000명)이기에 회사가 패소할 경우 3조1000억 원을 부담하게 된다.

향후 글로벌 경영환경의 급격한 악화가 예상되는데,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인 투자 등을 통해 사회 및 국가에 기여해야 하는 수조 원대의 돈을 빼내어 1억1000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노사 상호 간에 공통의 이해 상황과 전혀 다른 법리적 사유를 들어 추가 법정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하는 재정적 부담을 주어 중대한 경영상 곤란을 초래한다.

또 이러한 판결 결과는 일자리가 보장된 대기업 노동조합의 정규직과 중소 영세기업 비정규직 근로자 및 취약계층 간의 양극화를 점점 심화시키게 된다. 사회정의는 사회 계층의 양극화 격차를 줄일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역 사회 기업 노조가 모두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갈 공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비판받던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과 취약계층을 위해 자발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과도한 소송전으로 파국을 맞는 대신 노사 간 대화와 합의를 통해 공생과 미래를 논의하는 배려와 용기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상임금#통상임금 판결#갑을오토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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