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아더스’ 전성시대를 기다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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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Others.”

조너선 웨츨 매킨지글로벌연구소장의 13일 세계경제연구원 초청강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였다. 미국에서 지난 20년간 가장 빠르게 증가한 직군이라고 했다. 청중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일었다. ‘Others’, 즉 ‘기타’는 기존 직업군으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직업들이다. 그만큼 새로운 직업, 그것도 과거에는 없었던 일자리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는 의미다. ‘Others’는 미국 일자리 시장의 생동감을 대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이런 변화는 더 거세질 것이다.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태동한 비즈니스 생태계가 단숨에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단순히 기존 기업들이 채용을 늘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던 것과는 다른 형태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이런 변화와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보통주와 우선주를 더해 320조 원이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인 1387조 원의 23%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 202조 원은 올해 정부 전체 예산 401조 원의 절반이다. 한 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이른바 ‘스페셜 원(Special One)’들은 한국 경제를 지금에까지 이르게 한 주역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 대기업에만 기댈 수는 없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위해 기업들이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듯 국가 경제도 주력 산업과 신산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살아 숨쉬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정부와 정치권이 무분별하게 쌓아온 규제의 장벽에 번번이 막혔다.

아일랜드는 1845년부터 5년간 극심한 감자 대기근을 겪었다. 인구 850만 명 중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은 배고픔 때문에 나라를 떠났다.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단일 품종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었다. 생산성이 좋고 아일랜드인 입맛에 맞아 대부분 농가에서 재배하던 감자가 하필 당시 유행한 진균류 곰팡이에 취약했던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당장의 수익만 생각하다 새로운 품종을 키워내지 못한 게 아일랜드 전체에 독이 된 것이다. 이는 농업뿐 아니라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새로운 산업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시작점이다. 미국에서 ‘Others’가 급격히 증가한 배경이 그랬다. 한국에서는 드론 하나 날리기 어렵고 자율주행차도 연구소에서만 겨우 시범운행을 한다. 벤처 투자업계도 ‘될성부른 떡잎’을 찾기보다 당장이라도 제품을 팔 수 있는 ‘잘 자란 잎’에만 돈을 댄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도 눈에 보이는 제품을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와 친척, 친구 돈까지 모두 끌어다 쓰다 보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 이스라엘 등 벤처 강국들은 아이디어, 시제품, 상용 제품 등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별로 전담하는 투자 펀드들이 있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 일자리 공약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수십만 개를 만든다느니, 청년수당을 몇십만 원씩 쥐여주며 중소기업 일자리를 늘린다느니 하는 약속들은 실망스럽다.

신산업에 대한 사전 규제는 보고서를 들춰볼 것도 없이 무조건 없애버리겠다는 선언이 나왔으면 한다. 다음 달 9일 내 소중한 한 표는 그 후보의 몫이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others#4차 산업혁명#삼성전자#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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