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먹고살 거리’ 팽개치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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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르면 상반기에 대한민국 수출·건설의 역사를 새로 쓸 대형 이벤트가 열린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이 첫 시험 가동에 들어간다. 2009년 12월 수주한 지 8년여 만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마련하기 위해 물밑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과하게 홍보해서, 박근혜 정부는 애써 무시하느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원전 진출의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UAE에 원전 4기를 지으면서 발생한 건설 매출만 186억 달러(약 21조 원)다. 쏘나타 자동차 228만 대 수출과 맞먹는 규모다. 완공 후 6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거둘 수입까지 합치면 40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따낸 일감을 모두 합쳐도 281억 달러에 그친다.


UAE 원전으로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공기(工期) 내 완공’이다. ‘날짜 맞추는 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원전에선 그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본 도시바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를 채택한 중국 등에서는 기술 결함으로 3년 넘게 가동이 지연됐다. UAE에서 한국과 경쟁했던 프랑스 아레바도 핀란드에서 짓는 원전 사업이 기간을 지키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우리의 노력과 경쟁국의 부진이 겹치면서 한국은 원전 분야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었다. 선진국보다 2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약속한 기한 내에 안전성이 담보된 원전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한국만의 비기(秘技)다. 1억 달러 수출도 아쉬운 마당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해외 원전 사업은 놓치지 말아야 할 미래의 먹거리다.

UAE 이후 7년간 아무런 실적도 올리지 못한 한국은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서 영국 원전 컨소시엄(누젠) 지분을 인수해 영국에서 원전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무작정 달려들 일은 아니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들겨 결정하면 그만이다. 터키 베트남 등에서 줄줄이 수주 고배를 마셔온 한국이 해외 진출의 실마리를 다시 잡게 된 것만으로도 호재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돌발변수가 생겼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28명이 참여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그린피스와 함께 내놓은 공동성명서에서 “영국 원전 사업 수주 참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반핵 기조에 어긋나니 외화벌이도, 일자리 창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반미 논리로, 4대강 사업은 환경 파괴 논리로, 노동시장 개혁은 ‘쉬운 해고가 우려된다’며 반대한 세력들과 궤를 같이한다. 한미 FTA가 대미 수출을 늘리고 4대강은 가뭄 해결의 단초가 되면서 당시 반대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실업자가 사상 첫 100만 명을 돌파하며 고용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족쇄를 달기에 급급할 뿐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다양한 정책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공약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각 후보들은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달이라도 따 오겠다고 나설 정도로 간절해 보인다. 그만큼 청년실업은 심각하고 촌각을 다퉈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다. 눈앞에 있는 먹거리를 내던질 정도로 한가할 때가 아니다. 이념을 이유로 국부와 일자리를 늘릴 기회를 팽개치는 일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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