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양자 끝장토론 법적 걸림돌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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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정치부 차장
이태훈 정치부 차장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시국에서 안보 불안과 경제 위기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적임자를 선출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차기 대통령에게는 도덕성과 소통 능력, 소신과 결단력 등 국정을 과단성 있게 이끌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요구된다.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겪은 국민들도 이번에야말로 검증된 리더를 뽑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런데 조기 대선의 여건상 앞으로 대선일까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 후보들의 장단점을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적다. 또 공식 TV토론은 3회밖에 없는 데다 지금 구도에선 5명의 후보가 참여하도록 의무화돼 양자 간의 집중토론이 열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선택을 위한 중요한 이 시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5일 1위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양자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안 후보는 “아무 준비된 종이서류 없이 맨몸으로 자유롭게 끝장토론 하게 되면 실제로 저 사람의 생각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안이 성사되면 우리도 미국처럼 지지율 1, 2위 후보가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권자에게 꼭 필요한 채널이 아닐 수 없다.

대선 TV토론을 주관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 따르면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공식 TV토론을 3번(1회 120분씩)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초청 자격이 제한된다. 소속 의원이 5석 이상인 정당의 후보,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3% 이상 득표한 후보, 선거 기간 개시일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자가 참여할 수 있다. 현재 구도로는 문 후보와 안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 5명이 토론에 나오게 된다.

선관위는 철저한 후보 검증에 대한 높아진 여론을 고려해 공식 TV토론에서 기조연설을 없애고 집중토론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 방식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명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적인 제약 때문에 양자 끝장 토론은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은 한 불가능하다.

반면 언론기관은 후보들만 합의한다면 양자 토론회를 열 수 있는 법적인 걸림돌이 전혀 없다. 언론기관 초청 토론회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규정은 대선일 1년 전부터 토론회를 열 수 있다는 것과, 공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선언적 조항이 전부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모든 언론기관이 대선일까지 횟수 제한 없이 양자 끝장토론을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지지율 1, 2위 후보만 불러 토론회를 열면 나머지 3위 이하 후보들이 ‘공정보도’ 준수 조항을 근거로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기관이 나머지 후보들에게도 기회를 부여하면 형평성 문제가 해소되고, 유권자들이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미국은 비영리 민간기구인 대통령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양자 끝장토론 형식으로 공식 TV토론을 3회 개최한다.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일단 대상이 되지만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구성한 후보이거나 지지율이 15% 이상인 후보자로 제한돼 매번 민주-공화 양당의 후보가 나와서 90분간 스탠딩 토론을 치열하게 벌인다. 미국은 공식 TV토론이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돼 언론기관이 별도의 양자토론을 개최한 적은 없다.

최근 각 정당의 경선 TV토론은 많은 후보가 제한된 시간에 토론을 벌이는 구도로 진행돼 심도 깊은 후보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진정으로 나라와 미래를 생각하는 후보라면 양자 끝장토론을 수용해 국민에게 정확한 판단 정보를 제공하고, 선거문화와 정치문화를 일대 혁신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태훈 정치부 차장 jefflee@donga.com
#2017 대통령 선거#대선 tv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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