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개헌, 대선 후로 늦춰 새 대통령에 맡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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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에 개헌 서둘러도, 유력 대선 후보와 현직 대통령 반대 뚫기 어려워
개헌 논의는 지금 시작하되 20대 국회에서 발의해 차기 대통령이 추진해야
권력구조에 완벽한 제도 없어… 의회와 국민 지지 받는 쪽으로

황호택 논설주간
황호택 논설주간
 1987년 이후 헌정사에서 개헌론은 대통령의 임기 말에 불이 붙다가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반대로 동력을 잃는 패턴이 반복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집권 후에는 4년 중임제와 국민 기본권 강화를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말했으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개헌론이 불거질 때마다 ‘국정의 블랙홀’을 들먹이며 제동을 걸었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10일 “지금은 개헌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분명한 방침”이라고 말했는데 대통령의 뜻을 옮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개헌 논의를 출발시키는 것에 대해 인위적으로 저지하거나 막을 이유는 없다”고 한 말은 원론적으로 맞다. 개헌안 발의권은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갖고 있다. 임기가 1년 남짓한 대통령이 국가의 장기 비전을 담은 개헌안을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다.

 20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개헌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연합뉴스가 6월 19일 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 조사에 따르면 개헌 필요성에 250명(83.3%)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여야가 참여하는 개헌추진 의원 모임도 190여 명에 이른다. 연합뉴스 조사에서 의원들은 권력구조와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46.8%)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분권형 대통령제(24.4%), 의원내각제(14.0%) 순이었다.

 여야 공히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많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예산편성권을 국회가 갖고 있는 미국식의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의원내각제는 국회의 신뢰도가 낮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국민의 바램이 크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주류를 이룬다.

 대통령책임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분권형 대통령제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이다. 외교 국방을 맡는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내정(內政)은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담당하는 형태다. 국내에 정치세력이 없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려는 친박 쪽에서 간을 보는 것 같지만 성사 가능성은 낮다. 후보가 누구이든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한다면 국정의 절반 이상을 총리에게 내주는 분권형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상시적인 나라에서 외교 국방 등 외치(外治)와 내치를 분리하는 방식은 국정의 비효율과 혼란을 초래하기 쉽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5년)과 국회의원(4년)의 임기를 맞추자면 20대 국회의원은 임기를 단축할 수 없기 때문에 내년 선거에서 새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임기를 단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개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이 반대할 것이다. 현재로 봐서는 돌풍이 일지 않는 한 더민주당에서 그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과 의원의 임기를 꼭 맞출 필요가 없다는 관점도 설득력이 있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면 코스트는 낮아지지만 총선의 의미가 대선에 묻혀버리기 쉽다. 임기를 맞추는 것이 절대선은 아니다. 물론 대선과 총선을 따로 떼어놓는 경우 총선이 중간평가 성격을 띠어 여소야대가 되기 쉽지만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모두 여소야대에서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마련된 현행 헌법은 군부세력과 3김이 타협한 산물로 지금은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돼버렸다. 권력구조에 완벽한 제도는 없고 결국 의원들의 지지가 높고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의 복지, 통일 등 미래 비전을 담은 새 헌법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지만 이대로 가면 이번에도 5년 주기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은 대선에 임박한 시기가 아니라 시간 여유를 갖고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쳐야 성공할 수 있다.

 개헌 논의가 국정의 블랙홀이 된다는 박 대통령의 시각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굳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개헌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5년 임기 중 개헌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대통령 후보가 나온다면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개헌#대선#대통령#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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