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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최영훈의 법과 사람]흔들리는 것은 국기가 아니라 국격이다

입력 2016-08-20 03:00업데이트 2016-08-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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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그건 그렇고, (우병우 거취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어제 통화한 검찰총장 출신 A가 대화 말미에 대뜸 물었다. “자르긴 자를 것 같은데…”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식을 때를 기다려 택일(擇日)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밀려서 사람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다. 더욱이 김성우 홍보수석이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경로로 누구와 접촉했으며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야 한다”며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유출을 ‘국기를 흔드는 일’로 성토한 뒤끝이다. 박 대통령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우병우의 교체가 이뤄질 것 같다. 4·13총선 참패 후 현기환 전 정무수석을 한 달 보름여 뒤 바꾼 것도 나름의 준거다.

A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표현도 썼다. 의외였다. 뛰어난 정무감각과 검찰·법무행정을 꿰뚫는 통찰을 지닌 그의 판단을 나는 존중한다. 근거를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우병우를 무리하게 살리려다 검찰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명징한 논리였다.

우병우는 친정인 검찰에 부담을 주더라도 버틸 생각인 듯하다. 이런 그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감싸고 있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와 내각 참모 중 누구도 그럴 배포와 기개를 지닌 사람이 없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와대를 질타하는 소리가 와글와글한다. 그러나 들끓는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사람조차 없다.

청와대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자는 박 대통령을 ‘여왕’의 입장에 놓고 보면 의문이 풀린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자신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이 충직한 우병우를 멋대로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을 ‘배신(背信)’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뜬금없는 홍보수석의 강경한 메시지도 이해가 간다. 배신자는 반드시 응징해 영(令)을 세워야 한다는 집단사고에 갇힌 셈이다.

이석수가 감찰 내용을 누설한 것도 법 위반 차원을 떠나 보기에 좋지 않다. 사실이라면 검찰 수사를 받을 일이다. 다만 ‘범인 잡으라’ 외친 사람만 문제 삼는 듯한 본말전도(本末顚倒)는 비판받아야 한다. 이 사안도 민간단체가 이미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홍보수석이 공연히 독전(督戰)의 나팔을 불어 검찰의 운신 폭만 줄여놓은 것도 참 답답해 보인다.

공안에서 잔뼈가 굵어 감찰 전문가로 큰 이석수는 특별수사통인 우병우의 서울대 법대 3년 선배로 사법시험도 1년 먼저 합격했다. 그가 청와대 입성 때는 우병우의 덕을 보았을 테지만 이제 악연으로 변했다. 그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여권의 핵심은 “두 사람 모두 물러나야 한다”며 한숨지었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홍보수석이 공표한 ‘어명(御命)’을 따를지, 추상같은 수사로 망가진 검찰을 살리는 대의(大義)를 따를지 지켜볼 일이다. 앞서 우병우의 고향(경북 영주), 대학, 검찰 대선배인 이명재 청와대 민정특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참모로서 이 특보가 아끼는 후배를 용퇴시켜야 한다.

법무부 검찰 국가정보원과 같은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로 불려가는 몰골을 보일 것인가. 홍보수석이 언급했지만 지금 흔들리는 것은 국기(國紀)가 아니라 국격(國格)이다. 그러나 이 특보마저 최근 뇌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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