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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최영훈의 법과 사람]“화낼 자유도 없다”는 합리적 우파의 독백

입력 2016-05-07 03:00업데이트 2016-05-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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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대뜸 “화도 못 내겠다”고 했다. 며칠 전 신희택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통화를 할 때 꺼낸 말이다. 민심 이반(離叛)을 초래한 집권당의 공천 파동에 합리적 보수우파들이 화가 나 지역구는 2번, 비례는 3번을 찍은 표심 변화를 지적한 말이다. 그의 말에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릎을 쳤다.

두 巨野는 달라지지 않았다

신 교수는 9년 전 국내 최고의 로펌 김&장을 떠나 서울대 교수가 됐다. 모교 강단에 서기 위해 27년간 봉직한 곳을 떠나는 그의 결단을 다수의 법조인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여겼다. 수십억 원의 연봉을 미련 없이 포기한 것이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마친 뒤 그는 변호사 10명 미만인 태동기의 로펌을 택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기업 변호사로 잔뼈가 굵은 그의 정치적 성향은 합리적 우파로 볼 수 있다. 기업의 법률적 위험을 관리하고 조언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청장년기를 보낸 것이다. 로펌에 있을 때부터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역시 기득권층의 합리적 보수우파들이 많다.

“2, 3번 찍고 나서 손가락을 잘라버릴까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권당이 워낙 잘못해 화내긴 했지만 더 나쁜 결과만 부른 것 같다는 반성이다. 보수우파에겐 ‘화낼 자유도 없는 것 같다’고 다들 씁쓸해한다.” 신 교수는 “‘뻘짓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새끼 하며 건사했어야 한다’며 뒤늦게 땅을 친 사람도 있더라”고 했다.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으나 호남에서 참패하고, 국민의당이 비례 투표에서 선전해 제3당의 위상을 굳혔지만 이후 두 야당의 행태는 과거와 달라진 바가 없다. 그렇다고 집권당을 심판한 총선 민의에 부응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쇄신을 위해 긍정적 에너지를 짜내고 있느냐 하면 그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은 19대 국회가 막을 내리고 20대 개원을 준비하는 입법권력 교체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국회 권력은 확실하게 두 야당으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달라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남은 1년 9개월간 국정이 흔들리면 다음 정권에도 큰 부담이다. 최근 이란 방문에서 성과를 올렸다며 자화자찬한 박 대통령의 청와대 보좌진부터 개편해야 한다. 이들은 청문회 대상도 아니니 굳이 20대 개원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개편을 질질 끌고 있는 이유를 대체 모르겠다.

국정 난맥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실세 수석비서관의 비리를 최근 언론이 입수해 확인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형사처벌 대상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사실로 확인되면 메가톤급 파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다른 수석비서관은 사석에서 “대한민국은 나와 몇 명이 움직인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보릿자루 이병기 비서실장

이병기 비서실장은 작년 4월 성완종 비리 수사 이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비서실 장악력도 떨어져 있다. 청와대 개편의 이유를 10가지도 더 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 같다. 쓴소리의 대가(大家) 위징을 곁에 두고 나라를 잘 다스린 당 태종의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애독한 바 있지 않은가. 국정 쇄신에 성공하려면 눈치만 보는 참모들부터 바꿔야 한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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