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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최영훈의 법과 사람]박 대통령,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입력 2016-04-23 03:00업데이트 2016-04-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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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잔잔한 옛 노래들이 나온다. 명곡들이 복고풍 드라마의 촉촉한 분위기를 살렸다. 그중 ‘걱정말아요 그대’는 압권이다. 지난날 향수를 물씬 담았다. 이 노래가 ‘응팔’을 띄웠다. 서울대 출신 뮤지션 이적이 불렀다.

며칠 전, 원로급 인사들과 저녁을 했다. 집권당의 오만과 불통을 심판한 4·13총선이 저녁상의 안주였다. 필자도 이 정부의 인사 실패와 불통을 성토하는 몇 마디로 끼어들었다. 왜 이렇게, 아니 이 정도로 못 할진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때 검찰총장을 지낸 분이 촌철(寸鐵)의 한마디로 찔렀다. “짝사랑을 하셨구먼….”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다. 3년여 전 박정희 육영수가 부모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통일의 초석을 놓으며 번영의 기반을 다질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꼬리를 문 참담한 인사 실패와 굼뜬 행정, 불통 리더십은 한숨만 나오게 했다. 차츰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서 비판과 질책도 간혹 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사안에도 박 대통령은 도무지 변할 줄 몰랐다. 마치 청마 유치환의 시에 나오는 바위 같다. 파도가 아무리 쳐도 꿈쩍 않고 서 있는 의연함에 기가 질린다. 총선 참패에도, 거야(巨野)의 압박에도 대통령은 결코 변하지 않는 바위 같다.

이런 대통령의 무신경에 분노를 넘어 울화가 치민 적이 잦았다. 이제 나는 포기했다.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변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자꾸 변하라고 하는 것은 야만적인 폭력일 수 있다.

송해 선생은 대통령과 4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신군부 집권 후 청와대에서 나온 대통령과 모 건설회장 사이의 염문설이 나돌았다. 당시 대통령은 송 선생과 만난 자리에서 외투를 벗으며 “제가 임신한 것처럼 보여요”라며 싱긋 웃었다 한다. 작년 연말 대한노인회 간부들과 청와대 오찬 때 대통령 옆에 앉은 송 선생의 회고담. “(대통령의) 손마디 굵기가 옛날 절반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여 가슴이 아팠다.”

대통령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5년여 간격으로 흉탄에 잃었다. 대통령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을 이런 트라우마를 이해한다. 아니, 아버지가 심복의 총탄에 유명(幽明)을 달리했을 때 “전방에는 이상이 없나요”, 괴한의 커터 칼 피습을 받았을 때 “대전은요…”라고 물은 강인한 심성 또한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포기했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이 변하기를 원한다. 내년 11월 14일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그때 여야는 3파전이든 양자대결이든 대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의 대선 주자는 누구든 대통령을 공격하며 차별화를 꾀할 것이다. 지금 그때를 생각한다면 변해야 한다.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선거의 여왕에게 총선 참패는 뼈아플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변해야 한다. 세상만물이 변한다는 것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변하지 않고 정체하면 썩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그런 의미가 있죠/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그댄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오는 것은 오는 대로 준비하라.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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