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황용필]훈련소에 입소한 아들에게

동아일보 입력 2012-11-06 03:00수정 2012-1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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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부장
아들아, 너의 군 입대를 축하한다.

며칠 전 ‘장정 소포’라는 이름으로 집에 도착한 너의 옷가지와 신발들을 보며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너에 대한 그리움이 제법 크구나. 네 덕분에 그동안 아빠가 무심결에 지나친 병영 문화와 장병들의 세계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 누군가의 집에서 군대 간다고 하면 예전처럼 절대 그냥 입으로만 잘 다녀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푸른 제복의 사나이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볼 것이며 그의 모자와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진심 어린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아들아, 너는 지금 ‘가장 낮은 자’임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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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자리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재부팅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다. 마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고 속도가 느려지고, 작동도 잘 안 될 때면 프로그램을 재설치하여 재부팅하듯이 군대생활은 너의 꿈을 재부팅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2년여의 기간, 너의 꿈을 재설계하여 너만의 비전과 미래를 그리기 바란다.

아들아, 너는 지금, ‘가장 작은 자’임을 잊지 마라.

그동안 어디서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너는 훈련병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마라. 그렇기에 이름 그대로 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의 도움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족한 사람도 없고 누구도 도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도 없다. 팔다리 없이 전 세계를 누비는 희망 전도사, 호주의 닉 부이치치나 헬렌 켈러처럼 비록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있는 거란다. 너도 너의 건강한 손과 튼튼한 발길을 필요로 하는 동료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마라.

아들아, 너는 지금 ‘가장 귀한 자’임을 잊지 마라.

권리란 내가 남들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남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가리켜 의무라고 한다. 의무 가운데는 ‘납세의무’ ‘교육의무’ ‘성실의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다 자신을 위하고 또 집단이나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들이지만 ‘병역의 의무’는 자신의 안전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점에서 매우 숭고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건강하고 활기찬 몸과 마음으로 귀한 일을 잘 감당해 나가기 바란다.

에베레스트와 같이 높은 산이나 험한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은 대개 한밤중, 대지의 기온이 가장 낮을 때 등정에 나선다. 사람의 몸으로 느끼는 감정은 가장 피곤할 때지만 영하의 기온으로 만물이 얼어 있어, 오히려 대지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청년의 때에 너는 지금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고,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와 같은 처지에 있다. 그러나 집을 세우거나 리모델링하는 건축자에게 ‘그라운드 제로’는 최적의, 최고의, 최상의 시점이다.

아들아, 그래도 가끔 힘들고, 괴롭고, 세월이 더디다 싶으면 유대경전 주석서 ‘미드라시’의 ‘다윗 왕의 반지’에 나오는 이 말로 위안을 삼아라. “This too shall pass away”

훈련병의 인내도, 고참의 기분 좋은 여유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부장
#훈련소#아들#편지#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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