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고은주]엄마를 위한 나만의 ‘흰 지팡이’

동아일보 입력 2012-10-15 03:00수정 2012-10-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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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주 서울 청원여고 1학년
15일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흰 지팡이의 날’이다. 1970년 국제 시각장애인 연맹인 라이온스가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선포한 일종의 기념일이다. 이름도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적색 띠를 두른 흰 지팡이에서 따 왔다.

미국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이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능력과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행사를 열고, 흰 지팡이를 짚은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를 일반인에게 가르친다. 신호음이 나는 신호등과 기타 안전장치 설치 운동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라이온스 클럽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도 연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큰 행사가 없고 관심도 부족한 것 같다. 나 역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흰 지팡이’가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가 3년 전부터 한쪽 눈의 녹내장이 심해져 반쯤만 보이는 장애를 앓기 시작하고부터 나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엄마에게 왜 시각장애라는 시련이 찾아왔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자료를 찾는 동안 선천적인 결함이 아니라 화학물질 접촉에 의한 후천적인 실명(失明)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비누나 염료와 같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화학물질인 수산화나트륨이 실명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농약인 제초제도 직접적인 실명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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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시각장애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이 14만 명이나 되고 미등록 장애인을 포함하면 29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선진국에서는 산업현장에서의 시각장애 발생 실태가 잘 파악돼, 정부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일시적·영구적 시력 상실, 화학물질이나 금속물질에 의한 눈의 손상, 전기쇼크 등 의학적 치료를 요하는 구체적인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가 직접 원인 등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산업안전보건업무 담당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 제정 이후 기업 규제 완화 차원에서 정부의 조사 범위가 계속 줄었고, 2000년 ‘자율안전관리제도’가 시행되면서 산업안전보건업무 담당 근로감독관의 재해조사 범위는 대폭 축소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업 편의를 위한 정책의 후퇴가 뜻하지 않은 재해로 장애를 당하는 분들에게는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생활 속에서 다양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대신 최근에 설치되는 수직형 리프트는 아무런 안전 기준이 없어 매우 위험하다. 일반적인 대중교통 중 하나인 버스는 비장애인들에게만 대중교통일 뿐, 대부분의 장애인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한 교통수단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사랑도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 길에서 시각장애인을 이끄는 인도견이 많아지고 길을 건너라는 신호음을 들려주는 횡단보도가 늘어나는 것 등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날로 발전하는 최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더 획기적인 도움 방안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시력이 나빠진 엄마의 비극은 나에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삶’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엄마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을 다양하게 갖춰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진 못했지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해 엄마와 같은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기술과 제도 같은 ‘새로운 흰 지팡이’를 선물하고 싶다.

고은주 서울 청원여고 1학년
#시각장애인#흰 지팡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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