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의 프리미어리그 이야기]월드컵 유치전, 잉글랜드는 오만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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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안드레이 아르샤빈(아스널)의 맞대결을 보면서 이달 초 발표된 국제축구연맹(FIFA)의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이 생각났다. 박지성과 아르샤빈은 각각 한국의 2022년, 러시아의 2018년 유치전에 힘을 보탰다. 한국은 유치를 하지 못했고 러시아는 유치를 했으니 아르샤빈의 판정승이었다. 이날 경기에선 박지성이 결승골을 터뜨려 승리를 챙겼다. 사실 둘은 순수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FIFA 정치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월드컵 유치전에서 한국은 카타르에 졌고 잉글랜드는 러시아에 밀렸다. 월드컵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 유지란 당위성은 카타르의 오일 머니에 묻혔다. 잉글랜드 언론은 정몽준 FIFA 부회장을 포함한 집행위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왕자와 총리,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이 표를 부탁했고 찍어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2표를 얻는 데 그쳤다. 아마도 자국의 제프 톰프슨과 카메룬의 이사 하야투만 찍었을 것이다.

잉글랜드는 심통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 잉글랜드의 선데이타임스는 FIFA 집행위원회 투표를 한 달여 남겨두고 기자를 로비스트로 위장시켜 “표의 대가로 뭘 바라느냐”고 유혹해 두 명의 집행위원을 함정에 빠뜨려 자격정지시켰다. BBC는 투표 바로 며칠 전 FIFA 고위층의 조직적인 부정부패를 보도했다. 그 스토리는 옛날 것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것이었다. 또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잭 워너 집행위원이 월드컵 티켓을 시장 가격보다 높게 팔아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보도했는데 역효과를 봤다. 워너도 잉글랜드를 찍어줄 것으로 믿었는데 역시 찍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FIFA의 정치에 정말 초보다. 제프 블라터 회장은 무슨 말이든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과 잉글랜드에 “월드컵을 꼭 유치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고 카타르의 에어컨 경기장에 대해 “환상적”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카타르에서의 월드컵 개최는 그동안 한 번도 개최되지 않은 곳에서 열린다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올여름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린 남아공 월드컵도 성공적이었다. FIFA는 남아공 월드컵으로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를 벌었다. 오일과 천연가스 덕택에 카타르와 러시아가 공약한 대로 경기장 등 모든 기반 시설을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블라터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스포츠와 TV, 스폰서십이란 황금 삼각대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블라터가 9개 후보국에 “할 수 있다”는 엉뚱한 환상을 심어준 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모든 나라가 유치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썼다. FIFA 집행위원들은 마치 왕처럼 군림하며 개최 후보국을 노예처럼 가지고 놀았다. FIFA가 부패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러시아와 미국, 아랍, 인도 사람들이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소유했다. 그들의 돈으로 선수를 전 세계에서 사오고 있다. 자존심 강한 잉글랜드 국민이여! 박지성과 아르샤빈 등 외국 선수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랍 휴스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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