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뇌리에 남는 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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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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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는 척하고 싶을땐 모른 척하고 싶어져”- 아저씨

영화 ‘두 여자’. 남편의 애인을 쫓다가 그녀와 우정을 나누게 되는 아내의 사연을 담은 이 영화는 “열정이 사랑인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사랑의 잔인함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아내의 슬픈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사진 제공 하이컨셉
영화 ‘두 여자’. 남편의 애인을 쫓다가 그녀와 우정을 나누게 되는 아내의 사연을 담은 이 영화는 “열정이 사랑인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사랑의 잔인함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아내의 슬픈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사진 제공 하이컨셉
《“복수할 땐 자신을 감춰선 안 돼.” 은퇴한 암흑가 보스의 처절한 복수극을 담은 영화 ‘22블렛’. 주인공 찰리(장 르노)는 자신을 배신한 조직원들의 눈앞에 나타나 총알세례를 퍼붓고는 이런 한마디를 던진다. 복수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적들이 공포에 떠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영화는 잊혀져도 대사는 남는다는 말이 있듯, 영화 속엔 우리를 매혹시키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숨어 있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거나 쇼킹한 대사들을 부문별로 꼽는다.》

[1] 중년남자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대사=단연 영화 ‘페어 러브’다. 50대 노총각(안성기)과 20대 여대생(이하나)의 사랑을 담은 이 영화에서 여대생은 아버지뻘 되는 남자에게 이런 사랑고백을 한다. “아저씨, 예뻐요. 아저씨, 예뻐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예뻐요. 난 자기 일에 열심인 남자가 섹시해 보여요….” ‘예쁘다’는 평범한 단어가 이토록 암시적으로 다가올 줄이야!

저질스럽긴 하지만, 영화 ‘방자전’에서 양반집 자제 몽룡(류승범)을 유혹하는 춘향(조여정)의 편지글도 압권이다. “(제가) 얇은 모시적삼 차림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아유, 더워.”

[2] 간단하면서도 진리를 꿰뚫는 대사=“엄마가 그러는데, 사랑은 버스와 같대요. 잠시 기다리면 곧 다음 차가 오니까요….” 동성애 문학교수의 사랑을 그린 감각적인 영화 ‘싱글맨’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고독에 빠진 주인공(콜린 퍼스)이 우연히 마주친 스페인 출신 게이로부터 듣는 대사.

강동원 고수 주연의 영화 ‘초능력자’에서 “자네,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고수의 답변도 진리 그 자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사는 거 아닌가요?”

[3] 간담이 서늘한 대사=“태양을 한참 째려봤더니, (태양이) 말을 하데. 참으면 병 생긴다네….” 스릴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섬마을 사람들의 집단학대에 시달리던 여주인공(서영희)이 감자를 캐다 말고 돌연 해를 바라본 뒤 멍한 표정으로 이런 대사를 던진다. 그러고는 낫을 휘두르며 마을사람들을 학살하는데…. 도망가는 시고모에게 대고 시퍼런 낫을 든 그녀가 느릿하게 던지는 대사 “서이서이(서서히) 가유. 그러면 넘어져유”와 폭력남편을 난자한 뒤 시체에 미친 듯이 된장을 바르며 내뱉는 대사 “아파유? 많이유? 조금만 기다려유. 된장 발라줄게유”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4] 가장 폼 나는 대사=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원빈이 악당들에게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난 오늘만 산다. 그게 얼마나 × 같은 건지 보여줄게”라고 일성을 날리며 이웃집 소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순간이다. 소녀를 구출한 뒤 “나는 아는 척하고 싶을 땐 모른 척하고 싶어져”라며 소녀를 끌어안을 때의 대사도 압권.

[5]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대사=홍상수 감독의 최신작 ‘옥희의 영화’에서 예술가의 고뇌를 담은 다음 대사는 멋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인위를 통해야 진심이 전달된다니까….” “힘을 들여야만 네 가짜가 빠져나오고 네 진짜가 살아남는 거야.”

[6] 가장 말 되는 대사=“사람 밥 먹고 개소리 하고 앉았네.”(영화 ‘반가운 살인자’)

[7] 가장 노골적이면서 창의적인 대사=“꼬집을 땐 도톰한 델 꼬집어 줘”(영화 ‘나인’에서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스)란 대사가 돋보인다. 성적 소수자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 ‘페스티발’도 주목할 만하다. 한복집 과부(심혜진)는 자신의 변태스러운 성적 정체성이 밝혀지자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세상엔 변태엄마도 있는 거야.”

[8]
가장 ‘짠한’ 대사=남편(정준호)의 정부(情婦)를 추적하다가 그녀와 우정을 나누게 되는 여성(신은경)의 사연을 담은 영화 ‘두 여자’의 마지막 장면. “나, 언제가 제일 좋았어?” 하고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말한다. “당신이 나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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