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닥터]‘만능 금융상품’은 결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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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부쩍 은퇴와 관련된 상담이나 설명회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누구나 향후 30년간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은퇴준비에 대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수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너무 쉽게 은퇴자산을 금융상품 한두 개에 집중 투자해 놓고 결국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 왔다.

얼마 전 영업직원을 통해 은퇴자산 투자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온 고객이 좋은 예이다. 이 고객은 은퇴생활을 위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매각한 대금에 퇴직금을 합쳐 8억 원 정도를 조달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한 보험회사 직원에게서 8억 원으로 종신형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자신의 생존기간에 연 4000만 원 이상을 수령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은퇴 솔루션이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은퇴 컨설팅을 요청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고객은 신중하지 못한 제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종신형 연금은 유동성이 매우 제한된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을 다걸기(올인)할 만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은퇴생활을 하는 도중에 긴급히 자금이 필요할 때 쉽게 유동성을 창출할 수 없어 높은 금리를 내고 부채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종신형 연금에 가입한다면 긴급한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은퇴 예비자산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은퇴준비다.

두 번째로 이 제안은 긴 은퇴생활 중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가상승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현재가치 기준으로 보면 4000만 원이라는 생활비가 많아 보이지만 20년 후는 물가상승률을 2.5%로만 가정해도 현재가치 기준으로 2400만 원에 불과하다. 즉, 이 제안은 은퇴기간 중 물가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저하라는 요인에 마땅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제안의 경우 ‘피보험자’가 틀렸다. 필자가 종신형 연금보험이 여성을 위한 상품이라고 간주하는 이유는 배우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장기간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종신형 보험을 선택한다면 피보험자가 여성이 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는 먼저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남자이다. 그러면 남편이 예상대로 먼저 사망하면 보험금도 끊기는데 혼자 남은 배우자는 어떻게 살아갈까.

무엇보다 이 고객이 저지를 뻔한 가장 큰 실수는 은퇴생활에 대한 준비를 하나의 금융상품에만 의존하려 했다는 점이다. 은퇴생활 동안 발생 가능한 각종 삶의 이벤트는 여러 가지다. 이렇듯 복잡한 은퇴생활의 다양한 ‘수요(needs)’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은퇴생활 준비는 은퇴라는 중대한 삶의 이벤트와 각종 금융상품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산관리자에게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금융상품 한두 개가 만능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닌 것이다. 은퇴생활을 준비하려 한다면 충분한 자격과 경험을 가진 자산관리자부터 찾아봐야 마땅할 것이다.

이재경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장 jk1017.lee@samsung.com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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