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최근 개봉작 좌충우돌 감상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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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냐 3D…미녀 보디라인 입체로 보니 정신 ‘아뜩’
마루 밑… ‘훔친것’을 ‘빌리다’니… 아이들 배울라

‘피라냐 3D’
‘피라냐 3D’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기둥 줄거리와는 무관한 엉뚱한 질문이나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런 좌충우돌 단상들은 어떨 땐 영화 자체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애당초 영화란, 즐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되거나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는 예술이 아니었더냐.

먼저 ‘피라냐 3D’(8월 26일 개봉). 아, 정신세계란 걸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 오로지 미녀들의 왕가슴과 처절하게 뜯기고 잘려 나간 시체만이 지배하는 완벽한 물리적 세계를 보여준다. 200만 년 만에 호수에 나타난 살인물고기 떼에 의해 섹스와 자극에 탐닉해 있던 청춘남녀들이 잔혹하게 도륙된다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 주목할 만한 의미는 3차원(3D) 입체 효과 자체다.

여기에는 천이라기보다는 실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미녀가 한 1000명쯤 등장해 미친 듯이 가슴을 흔들어대는데, 3D를 통해 클로즈업 쇼트로 실감나게 구현되는 미녀들의 몸은 그 자체가 스펙터클이요, 의미다. 인간의 하찮고 작은 몸뚱이 하나지만 3D로 샅샅이 훑어가는 보디라인은 마치 산악모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솟을 곳은 솟고 움푹 팬 곳은 심하게 패는 굉장한 입체적 굴곡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특히 벌거벗은 미녀 둘이서 물속에서 야릇하게 뒤엉켜 인어처럼 뇌쇄적인 춤을 추는 장면은 압권. 3D 안경을 쓴 바로 눈앞에서 두 미녀가 공중에 동동 뜬 채 스르륵 엉켰다가 풀리는데, 나 같은 중년 아저씨의 마음속엔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두 가지 현상을 어렵잖게 예견할 수 있으니…. 첫째는 입체효과가 포르노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리라는 것이고, 둘째는 향후 3D 영화에는 이 영화에서처럼 의학의 도움을 받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비현실적 가슴들이 아니고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점이다.

그 다음은 일본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키 10cm의 소인들이 인간이 사는 마루 밑에서 인간과 똑같은 문화를 이루며 산다는 낭만적(일 수 있었는데 실제론 영 밋밋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 이 영화를 보는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으니, 바로 이 영화가 잘못된 도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 소인들은 밤에 인간의 부엌으로 몰래 가 각설탕을 비롯한 음식 재료와 휴지 등 각종 생필품을 가져오는데, 이런 행동을 하는 자신들을 두고 ‘빌려 쓰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다. ‘빌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돌려주거나 대가를 치르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이다. 따라서 소인들은 스스로를 ‘빌려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훔쳐 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이 영화를 본 자녀가 문방구에서 알림장을 슬쩍 훔쳐 와서는 ‘엄마, 나 문방구에서 빌려 쓰는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적자’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 두 영화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두 편이었다. 왜냐? ‘무적자’는 굉장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믿을 수 없을 만큼 졸작이었고, ‘김복남…’은 그렇고 그런 B급 영화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최근 본 가장 밀도 높은 스릴러였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적자’는 미스터리다. ‘파이란’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만든 송해성 감독에다가, 일단 외모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게다가 전무후무한 홍콩 누아르 ‘영웅본색’의 리메이크라는 화제성까지…. 이런 화려한 배경에서 어찌 이리 산만하고 지루한, 재앙에 가까운 영화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나 비장하게 죽을래’ 하며 뮤직비디오처럼 움직이는 마초들로 가득할 뿐이다.

반면 ‘김복남…’은 소수 정서를 담은 B급 영화를 연상시키는 제목 탓에 오히려 흥행에 손해를 본 경우. 오직 원시적 욕망과 약육강식의 권력관계만이 존재하는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복수극을 그린 이 영화는 ‘악마를 보았다’보다 두 배쯤 더 잔혹한 살인 장면을 보여주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살인극을 벌이는 여성 김복남(서영희)의 심정을 십분 헤아리도록 만드는 슬픈 수작이다. 뭐랄까. 동물적인 이 영화는, 뜨겁고, 차갑다. 특히 섬마을의 집단적 억압에 눌려 있던 김복남이 낫으로 미친 듯이 감자를 캐다 말고 돌연 해를 응시한 뒤 벌이는 참혹한 살인극은 올해 한국영화 사상 체감온도와 응집력이 가장 높은 시퀀스. 특히 “태양을 한참 째려 봤더니 (태양이) 말을 하데…. 참으면 병 생긴다네…” 하며 멍한 표정으로 낫을 휘둘러 사람들의 목에다 꽂아 버리는 서영희의 연기는 압권. 정작 영화보다 더 잔인한 것은,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관객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으면서도 시종 침착한 페이스를 잃지 않은 신인감독 장철수의 자기절제력인 것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동영상=피라냐 3D용 특별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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