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일해도 일해도 제자리… 근로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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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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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택시를 몰고 퇴근하는 아침… 묻는다, 내게도 희망이 있느냐고…

《33세의 가장 강석민(가명) 씨. 경기 성남시에서 야간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그는 딸 셋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을 하지만 형편은 제자리걸음이다. 워킹 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 일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소득은 낮지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고용상황이 취약하며 일자리를 잃거나 질병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바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다. 그 수가 350만 명에 육박하며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일자리원스톱센터를 통해 강 씨를 소개받은 취재팀은 4일 그의 집을 방문해 그의 하루와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수입-지출에 대해 들어봤다. 기사 중 고딕글씨는 ‘한국 근로빈곤층의 객관적 현실’이다.》

○ 일은 하지만…

경기 성남에서 야간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강석민 씨(왼쪽)가 밤샘 근무를 마친 뒤 눈도 붙이지 못한 채 아내와 함께 인터넷 중고물품 커뮤니티 게시판을 검색하고 있다. 강 씨는 이곳에서 고장 난 모형자동차 등을 매입한 후 수리해 되파는 온라인 중고매매업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경기 성남에서 야간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강석민 씨(왼쪽)가 밤샘 근무를 마친 뒤 눈도 붙이지 못한 채 아내와 함께 인터넷 중고물품 커뮤니티 게시판을 검색하고 있다. 강 씨는 이곳에서 고장 난 모형자동차 등을 매입한 후 수리해 되파는 온라인 중고매매업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내 하루는 오후 7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야간조 택시운전사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기쁨도 잠시, 성남 시내에 있는 택시회사로 출근한다.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있는 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집을 나섰다. 마음이 급하다. 낮 근무자는 보통 오후 8시 반∼9시에 돌아오지만 나는 최소한 1시간 반 전에는 도착해 기다려야 한다. 낮 근무자가 일찍 들어올 경우 오후 8시부터 영업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12시간 동안 택시를 몰지만 1시간이라도 더 뛰면 그만큼 더 벌 것 아닌가.

최근 들어 눈이 자주 아프다. 과로 탓인지…. 밤 1시면 배가 고프다.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빵을 먹는다. 그 밖에는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식당 가서 천천히 밥 먹고 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쉴 틈이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 석 달 전 셋째도 태어났는데….

밤새워 근무해도 내 손에 떨어지는 돈은 4만5000원가량. 하룻밤에 13만 원 정도 버는데, 8만5000원은 회사에 입금해야 한다. 회사에 입금하고 돈이 남으면 다행이다. 입금액을 못 벌어 내 돈으로 메울 때면 속이 타들어 간다.
강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근로빈곤층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근로빈곤층은 348만 명(2009년 기준)으로, 2007년(156만 명)의 2배가 넘는다. 전체 취업자(2351만 명)의 14.8%에 이른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개편되면서 저숙련 노동인력 수요와 실질임금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한번 근로빈곤층이 되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됐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의 증가속도는 그에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 아무리 절약해도…

오전 9시. 택시를 회사에 세우고 집으로 향했다. 성남시 신흥동의 49.5m²(15평)짜리 반지하 다세대주택이다. 빨래건조대, 냉장고, 책꽂이 등으로 거실이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에 와도 그냥 잘 수가 없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컴퓨터를 켰다. 중고물품 커뮤니티를 검색하기 위해서다. 고장 난 모형자동차, 모형비행기 등을 매입해 수리한 후 되파는 온라인 중고매매업을 4년째 부업으로 하고 있다. 중고매물을 찾고, 수리하다 보면 점심때가 다 된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오후 3시. 아무리 피곤해도 3∼4시간만 자면 눈이 떠진다. 먹고사는 게 빠듯하니 그런가 보다.

이렇게 일했지만 지난달 번 돈은 150만 원이다. 택시 운전으로 130만 원을, 중고품 수리로 20만 원을 벌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5인 가족 최저생계비(2010년 기준)는 161만5263원이라는데…. 아내는 백화점에서 일했지만 2006년 둘째 아이를 낳은 뒤 그만뒀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빈곤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전국 도시지역 5000가구 가계를 추적한 ‘한국노동패널조사’ 중 외환위기 이후의 10년 치(1998∼2007년) 자료를 사회통합위원회가 분석한 결과 도시 가구 다섯 집 중 세 곳(57%)이 10년 사이 한 번 이상 빈곤층에 포함됐다. 또 네 집 중 한 곳(23.7%)은 5년 이상 빈곤층에 포함돼 있었다. 5년 이상 빈곤층에 머무른 가정 중에서 장애인, 노인 등 근로활동이 어려운 사람이 있는 가정은 19%에 불과했다. 나머지(81%)는 다 근로빈곤층이었다.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빈곤상태에 놓인 가정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14.3%에 불과했지만 계속 증가해 2007년에는 20.3%를 기록했다.
○ 자꾸만 추락한다

지난달 가계부를 펼쳐봤다. 어이쿠. 지출액이 190만 원이 넘었다. 수입보다 40만 원 가까이 더 쓴 셈이다. 한 달 내내 대부분의 식사를 밥과 나물, 찌개 정도로 간단히 먹지만 식료품비로 25만 원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는 아침도 먹지 않는다. 아내도 혼자 있을 때는 거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지만 어쩌다 하더라도 자장면으로 2만 원 선에서 해결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가끔 친가나 처가에서 고기반찬을 보내주면 너무 반갑다. 두 딸의 교육비가 가장 걱정이다. 그나마 어린이집 비용의 절반가량(45만 원)을 동사무소에서 지원해줘 숨통이 트인다. 아이들이 쑥쑥 크는 것을 보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해진다. 지난달에는 아이들 옷을 사느라 15만 원을 썼다. 우리 부부는 3개월 동안 티셔츠 한 장 안 샀다.

이른바 ‘투 잡(two job)’이지만 생활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하루에 17시간 일하는데도. 그렇다고 씀씀이가 큰 것도 아니다. 신화 속의 시시포스처럼 매일 언덕 위로 돌을 밀어 올리지만 돌은 항상 제자리에 와있다. 처음보다 더 내려가는 것도 다반사다.

없는 살림이지만 약 10만 원은 실손의료보험료(환자 본인이 부담한 실제 병원치료비를 90%까지 보장해 주는 보험으로 손해보험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로 낸다. 전에 들었던 다른 보험이나 청약저축은 다 해지했지만 이것마저 깰 수는 없었다. 갑자기 큰 병이라도 걸리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 석 달 전 셋째 딸이 태어났는데 아내가 제왕절개를 해 병원비만 80만 원 넘게 나왔다. 달리 빌릴 데도 없어 사채업자에게서 연 40% 이자로 100만 원을 빌렸다.

강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근로빈곤층 중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비율은 26.8%나 됐다. 나머지 사회보험의 경우 근로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정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근로빈곤층 중 국민연금 가입가구는 12.1%에 불과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률도 각각 6.0%와 7.2%에 그쳤다. 근로빈곤층은 결국 ‘빈곤노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나는 대구 소재 한 대학의 세무회계학과 학생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악화돼 중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2003년 한 의류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월급도 200만 원대 중반이었다.

2006년 이 회사를 그만둔 뒤부터 일이 잘 안 풀렸다. 이때부터 옮긴 회사만 유리인테리어회사, 공기청정기회사, 휴대전화영업직 등. 택시 운전을 한 지는 만 1년이 됐다. 수입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직장을 옮겼지만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불의의 사고나 사건을 겪지도 않았다. 술이나 도박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버는 돈보다 기본적으로 써야 할 돈의 항목과 액수가 증가했을 뿐이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사는 것은 자꾸 어려워질까.

아내는 월세 기간이 11월이면 끝난다고 걱정한다. 2년 전 계약 때도 보증금 500만 원이 모자라 몇 달에 걸쳐서 냈다. 지금 이사 비용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열심히 일하면 형편이 나아질까?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한단 말인가?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 지금보다 좋아질까?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근로빈곤층에 대한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근로빈곤층을 포함한 전체 빈곤층 500만여 명 중 제대로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163만여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기초생활보장제에 따른 지원 방식은 대상자가 일을 해도 실제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구조다. 생계비를 정액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생계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100만 원을 지원받던 사람이 일을 구해 50만 원을 벌면 정부에서는 50만 원만 지원해 준다. 이러니 돈이 쌓이질 않고 일할 의욕은 사라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근로장려세제(EITC·소득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돈을 더 주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상 범위가 좁고 지원 액수가 적어 효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은 근로장려세제가 확산되면서 근로빈곤층에서 탈출한 사람이 많아졌다. 반면 우리는 대상자가 적고 최대 급여액이 1년에 80만 원, 한 달에 보통 5만 원 정도의 혜택을 주다 보니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로빈곤층의 경우 교육, 복지, 고용 등을 통합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빈곤층에 대해 혜택만 주는 복지정책은 자립을 유도하지 못하고, 취업만 강요하는 고용정책은 꼭 필요한 복지지원마저 배제되는 만큼 지원 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와 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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