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2부]<9>아이 낳지 말라는 사회… 흔들리는 인구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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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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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서 동생 안낳는거야?” 엄마 눈이 빨개진다… 괜히 말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일주일에 5번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12시간을 보내는 수빈이. 다니고 있는 솔로몬 어린이집에서 손가락을 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수빈이는 취재 기자에게 “기자 선생님도 아기가 있어요? 선생님 아기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일주일에 5번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12시간을 보내는 수빈이. 다니고 있는 솔로몬 어린이집에서 손가락을 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수빈이는 취재 기자에게 “기자 선생님도 아기가 있어요? 선생님 아기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7세 여자아이 수빈이의 엄마 아빠는 맞벌이 부부다.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아빠는 운전을 한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다가구주택에서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산다. 전형적인 서민 가정이다.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수빈이는 집 근처 솔로몬 어린이집에서 지낸다. 민간 시설이지만 서울시가 지원하는 이른바 ‘서울형 어린이집’이다. 취재팀은 서울시 보육관련 부서로부터 수빈이네를 소개 받았다. 가족의 양해를 얻어 지난달 30일 수빈이의 하루를 지켜봤고, 가족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수빈이의 입을 빌려 그의 일상을 그려본다. 고딕 글씨는 ‘한국의 객관적 현실’이다.》

중곡동 솔로몬 어린이집. 엄마가 떠났다. 매일 아침 있는 일이다. 엄마는 헤어질 때마다 “수빈이, 안녕”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곱게 빗어 묶은 머리가 흐트러질까 신경이 쓰이지만 엄마 손길은 기분 좋다. 엄마는 선생님께 “잘 부탁드려요”라고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 현관을 나선다. 식당으로 출근하는 길, 엄마의 발걸음은 느릿느릿하다. 밤에 나를 데리러 올 때는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오는데….

엄마는 식당일에 대해 ‘집도 주고 밥도 주는 고마운 일’이라고 했지만, 출근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 일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아침 간식시간. 먼저 우유를 마시던 친구들이 “수빈이는 혈액형이 뭐야”라고 묻는다. 우유를 마시며 혈액형 맞히기 놀이를 하다 보니 엄마 생각이 덜 난다. 엄마를 다시 만나려면 12시간이 남았다.

두 살 때부터 다니던 어린이집이다. 5년째 다니는 내가 가장 언니다. 어린이집이 없었으면 집에 혼자 있을 뻔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멀리 시골에 사시기 때문에 아빠 엄마 휴가 때나 볼 수 있다.

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회사를 관뒀다. 그리고 내가 두 돌이 지날 때까지는 집에 계셨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 적도 있다. 엄마는 두 달 만에 나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모가 아이 넷을 돌보느라 끙끙대는 게 안쓰러웠다고 했다. 게다가 이모부라도 집에 일찍 오시면 나는 마음껏(?) 울 수도 없었다.

어린이집은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좋다. 어린이집에 안 오는 날에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었던 적이 딱 한 번 있긴 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시끄럽다며 소리를 질렀을 때다. 깜짝 놀라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 후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갔다. 일주일 동안 그랬다.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와 함께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받았고, 다행히 어린이집 가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돌봐줄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으면 대체로 수빈이처럼 어린이집에서 지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전체 정원의 80%만 차 있는 상태다. 숫자상 시설이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부의 지원도 꾸준히 늘어나 소득 하위 50%까지는 보육료 전액을 지원받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엄마들은 “아이를 맡길 만한 보육시설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자녀양육에 전념하기 위해’(57%),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서’(30.3%) 취업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숫자상의 어린이집 정원과 ‘실제 수요’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말 더운 날이다.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주셨다. 특별한 일이다. 집에서 혼자 먹을 때보다 친구들과 장난하며 먹으면 훨씬 맛있다. 그림 그리기 시간. 선생님이 종이와 색연필을 나눠 주시며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리라고 하신다. 빨간 동그라미 2개, 노란 동그라미 2개, 주황색 동그라미 2개.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니 전화기 숫자판 같이 보인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010-7570-○○○○. 엄마 전화번호를 적어 본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 참기로 했다. 식당에서 두 손에 가득 음식을 나르는 엄마는 종종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럴 땐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엄마, 나도 동생 있으면 안 돼?” 언젠가 엄마한테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라 보았다. “휴∼” 하는 한숨 소리가 돌아왔다.

“수빈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니?”

“응.”

“엄마는 수빈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니까 공부를 많이 시켜주고 싶어. 엄마는 수빈이 하나만 잘 키울 생각이야.”

요즘 엄마 걱정이 커졌다. 내가 내년에 학교에 가면 돈이 많이 들 거라고. 하긴 엄마는 가끔 갓난아기인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분유, 기저귀 사느라 지갑이 빌까봐 늘 조마조마했단다.

“엄마, 돈이 없어서 그래? 동생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

“아니야, 수빈아. 우리 돈 있어.” 엄마 눈이 빨개진다. 동생 낳아 달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수빈이 엄마가 둘째 아이 낳기를 포기할 만큼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은 과도하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낳은 뒤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고 교육시키려면 2009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약 2억6204만 원의 비용이 든다. 자녀 양육비용은 영아(0∼2세)는 2466만 원, 유아(3∼5세)는 2938만 원, 초등학생(6∼11세)은 6300만 원이다. 여기에 여성이 출산 육아에 따라 일자리를 포기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자녀 양육비용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우리 반 친구 14명 가운데 5명이 남았다. 오후 3시부터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가 올 시간이면 나와 민혁(가명·7)이만 남을 것이다. 민혁이는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낸다. 엄마 아빠가 지방 공사장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엄마 아빠가 서울에 오실 때만 집에 간다. 지금 민혁이는 야간반 선생님이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하고 구몬 학습지를 푼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늘어나고 선생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엄마는 밤 10시나 돼야 일이 끝난다. 나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10시 20분쯤. 엄마가 식당을 어린이집 근처로 옮겨서 그나마 빨라졌다. 이전에는 11시가 다 돼서야 왔다.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운전을 하는 아빠는 새벽 5시 40분에 나간다. 집에는 보통 밤 12시가 돼야 온다. 새벽 한두 시에 올 때도 많다. 내가 잠자는 사이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시는 셈이다.

가끔 낮에 통화는 한다. “아빠 몇 시에 와, 늦어?” 하고 물으면 아빠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이럴 때 “아빠 사랑해”라고 하면 아빠는 다시 쾌활해진다. 아빠가 자전거를 밀어주시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우리 수빈이 잘한다”고 박수를 쳐 주시면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래서 아빠가 토요일에 하루 종일 주무실 때는 서운하다.

2008년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256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배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길다. 일과 가정을 다 챙기기가 쉽지 않다. 힘든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대면하는 시간이 하루 한두 시간에 불과한 아이들이 행복할 리 없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의 ‘돌봄 공백’은 심각하다. 엄마나 아빠가 한 명만 있는 한부모가정, 조손(祖孫)가정, 맞벌이가정이 늘어나면서 홀로 남겨지는 아동이 100만 명을 넘어선다는 통계도 있다.

엄마가 왔다. “수빈아, 집에 가자.” 무덤덤하게 가방을 챙기는 나를 보고 외동딸 같지 않게 어리광을 피울 줄도 모른다고 엄마는 걱정한다. 혼자 남은 민혁이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엄마 손을 잡으니 배도 고프다. 집에 가서 과일 먹고 엄마 옆에서 자야겠다. 지친 엄마가 나보다 먼저 잠들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5명. OECD는 한국이 2020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과 양육에 따른 경제적·비경제적 비용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44세 기혼여성의 출산 중단 사유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명확하다. 자녀양육·교육부담이 35.1%로 첫 번째로 꼽혔다. 가치관 변화(24.6%), 소득·고용불안정(19.3%), 일·가정 양립 곤란(15.8%) 순이었다.

청년실업은 미혼과 만혼으로 이어졌다. 취업 여성은 결혼하더라도 보육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한다. 자녀 양육비·교육비가 높다 보니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당위만 되뇌어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힘든 구조다.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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