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밴쿠버 영웅들에게 바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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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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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연아에겐 ‘아바타’
눈물의 女쇼트트랙엔 ‘하모니’

1일 막을 내린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신세대 선수들은 감동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피겨의 여왕’ 김연아의 표현대로 선수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으리라. 하루 8시간이 넘는 지옥훈련으로 극장에 가 영화를 볼 틈도 없었을 대한민국의 영웅들. 그들이 그간의 노고를 잊고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훨훨 털어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을 ‘맞춤형’으로 소개한다. 아무쪼록 이들 영화 보시고, 행복하시길.

먼저, 김연아 선수. 갈라쇼에서 ‘Here she is(그녀가 왔습니다)’란 한마디로도 소개가 충분할 만큼 이젠 세계에서 ‘she(그녀)’란 대명사와 동일시되는 김연아. 부디 그녀가 영화 ‘아바타’를 보았으면 한다. 사실,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 기간 중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아바타’였으니…. 우리는 김연아의 몸과 마음에다 우리의 꿈을 실었고, 연아는 대한민국의 기운과 비전이 체화(體化)된 아름다운 아바타가 되어 은반 위를 누볐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고 매혹적인, 영화 ‘아바타’의 명대사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는 경기를 펼치는 김연아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심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아의 모습을 마음 졸이며 바라보면서 김연아와 교감하고 결국 하나가 되었다. 연아, 아이 시 유!

김연아의 그늘에 가려 눈물을 흘린 일본의 은메달리스트 아사다 마오를 위한 영화도 한 편 추천할까 한다. 그녀는 비장미가 깃든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지만 결정적으로 스스로를 믿으며 스트레스를 즐겁게 이겨내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아쉬웠다. 아사다에겐 ‘맨 온 와이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천한다.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타기로 가로지른 한 거리 곡예사의 놀라운 도전을 담은 이 영화를 통해 ‘결국 내가 싸우는 대상은 김연아란 타자(他者)가 아니라, 외줄 위에 외롭게 선 나 자신’이란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또 막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심령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보면 김연아와 같은 ‘강심장’을 키우는 데 다소 도움이 될 듯.

노하우 전수 이규혁에겐 ‘그랜토리노’를
질긴 승부사 모태범 ‘거북이 달린다’ 제격


사실, 이번 올림픽의 숨은 영웅은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 선수다. 16년간 5회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의 ‘한’을 풀지 못한 그는 모태범과 같은 후배 선수들에게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준 진정한 ‘맏형’이었다. 헌신적인 그에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가슴 저미는 영화 ‘그랜토리노’를 추천한다. 극중 나이 든 주인공 월트가 1972년산 자동차 그랜토리노에 자신을 투사하며 ‘오래되었지만 소중한 것’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는 대목에서 나는 이 영화 속 그랜토리노가 이규혁이란 존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을 희생해 다음 세대에게 소중한 가치를 전하며 숨져 가는 월트의 마지막 모습에선 이규혁의 헌신적인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이다. 이규혁, 당신은 우리의 마음을 영화 속 낡은 자동차 그랜토리노처럼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울렸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예기치 않은 금메달로 우리를 기쁘게 한 신세대 모태범 선수에겐 김윤석 주연의 영화 ‘거북이 달린다’가 어울린다. 시골마을의 무식하고 촌스러운 형사 조필성(김윤석)이 신출귀몰하는 탈주범을 붙잡고야 만다는 내용의 이 영화를 보면 자꾸만 모태범이 떠오른다. 왜냐고? 모태범이야말로 이 영화 속 형사가 그러했듯 ‘빠른 놈 위에 질긴 놈이 있다’는 진리를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모태범 선수, 이 영화 보면서 모든 노고 잊으세요! 스타트 후 앞만 보고 무지막지하게 달려 나가는 모태범의 모습을 보면 ‘허걱’ 하는 감탄과 함께 마치 영화 ‘차우’ 속의 거대한 멧돼지가 굉장한 에너지로 질주하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한국체대 같은 학번으로 ‘절친’(매우 친한 친구)인 금메달리스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는 귀국하자마자 함께 ‘의형제’를 보았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정과 신의를 더 굳고 아름답게 다지는 그들이 되기를….

한편, 억울한 실격 판정으로 금메달을 목전에서 놓친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에는 영화 ‘하모니’를 추천한다. 일단 실컷 울고, 전부 잊었으면 한다. 당신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진정한 하모니를 이룬 최고의 팀이었다! 다만 납득하기 어려운 실격 판정을 내린 제임스 휴이시 심판에게도 영화 두 편을 추천하니, 그것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과 ‘평행이론’이란 영화다. 왜냐고? ‘…상상극장’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처럼 난해하고 초현실적이기 때문이고, ‘평행이론’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루해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왠지 ‘불신지옥’이라는, 무지하게 식겁하게 만드는 국산 공포영화도 그에게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 모두에게 ‘더 로드’라는 영화를 제안한다. 이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영화는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 아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꿈을 찾아 길을 걷고 또 걷는 한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이 아버지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꿈을 찾아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그저 길을 걸으며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어 가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야”라고. 그렇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 당신들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우리의 마음에 소중한 불씨(희망)를 심어준 존재들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파이팅!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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