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최진석 하이닉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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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하이닉스 성공시킨 건 8할이 ‘일치단결’

야전침대서 지내며 회생 독려
임직원에 위기서 강한 근성 심어

15조원 빚더미서 출발한 회사
올 3분기 영업익 2090억원 ‘신화


1999년 반도체 빅딜로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합병해 탄생한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미운오리새끼’였다. 출범 당시 부채 15조 원을 짊어졌고, 2001년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내면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2002년에는 미국 반도체회사인 마이크론에 매각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랬던 하이닉스가 현재 세계 2위의 D램 업체로 거듭났다. 특히 최근 2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벌어진 ‘치킨게임’ 속에서 살아남아 올 3분기에는 여덟 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런 결과는 전체 임직원의 오기와 열정, 집념 덕분이었다.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은 자신의 임금을 35% 깎았고, 직원들은 휴일근무수당을 반납한 채 밤낮으로 연구개발(R&D)에 매달렸다. 회사도 전체 매출액의 11%(2008년)를 R&D에 쏟아 부었다.

반도체 업계는 하이닉스를 회생시킨 주역으로 최진석 하이닉스 부사장(신사업 제조총괄본부장·51)을 꼽는다. 최 부사장은 하이닉스 회생과 반도체 생산성 향상 등의 공로로 29일 ‘제2회 반도체의 날’을 맞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25년 반도체 전문가

최 부사장은 1984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지금까지 오로지 반도체 분야에만 매달렸다. 삼성 시절 남들은 한 번 타기도 힘들다는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세 번이나 탔다. 그런 뒤 2001년 하이닉스로 옮겨왔다.

하이닉스의 채권단이 미국 마이크론과 하이닉스 매각 협상을 벌이던 2002년. 최 부사장은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가면 기술만 유출될 게 뻔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이닉스 회생’이라는 목표만 맴돌았다.

어느 날 그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부행장을 직접 찾아갔다. 일면식도 없던 부행장에게 그는 “한 시간만 시간을 내달라. 설명할 게 있다”고 요청했다. ‘하이닉스는 충분히 회생할 수 있다. 과거 기초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해서 추가 투자자금이 많이 필요치 않다.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설득의 요지였다. 최 부사장은 가방에서 반도체 공정이 그려진 도표를 꺼내 펼쳐 보이면서 “하이닉스는 돈이 없어 전체 라인을 바꾸긴 어렵지만 일부 공정만 바꾸는 것으로 최소 비용을 들여 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 뒤 채권단은 마이크론에 하이닉스를 매각하는 안건을 부결했다. 당시 부행장은 이후 사석에서 최 부사장을 만나 “당신의 설명을 듣고 하이닉스를 팔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털어놨다.

○ 낡은 장비 손봐 공정 개선한 헝그리 정신

일단 고비를 넘긴 뒤 남은 일은 하이닉스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 ‘실탄’(투자자금)은 여전히 모자랐다. 할 수 없이 낡은 장비를 손봐가며 공정을 개선했다. 구닥다리 장비를 돌리다 보니 현장 직원들은 혹시나 기계가 멈출까봐 기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최 부사장도 사무실에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놓았다. 최 부사장은 “오후 10시까지 근무는 기본이고 밤을 새우는 직원들도 무척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새로운 장비 없이 그저 직원들의 열성과 땀으로 절감한 비용은 그 다음 해 투자비로 썼다.

R&D에만 매달렸던 최 부사장은 2003년 또 다른 실험을 했다. 개발자에서 생산자로 변신한 것. 처음으로 제조본부장을 맡아 공장에 뛰어들었다. 하이닉스에 이른바 ‘책임자 생산제’를 도입했다. 개발자가 개발을 끝낸 뒤 공장 현장에 가서 개발에서 양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자는 것이다. 생산 라인에선 ‘개발을 잘못해서 수율이 낮아졌다’는 핑계를 댈 수 없고, 개발자들은 ‘공정이 불량해서’라고 얘기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세계 최저 제조원가 달성’(2004∼2005년) ‘웨이퍼 월간 생산량 세계 최고 달성’(2003∼2005년) ‘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bit growth) 최고 단위 달성’(2004∼2005년) 등 갖가지 기록을 내놓았다.

○ 불황에 강한 하이닉스

최 부사장은 ‘수율의 달인’으로 불린다. 2007년 황창규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D램 수율이 하이닉스에 일시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게 보고했다. 이 전 회장은 하이닉스 수율을 끌어올린 주인공이 최 부사장임을 알고는 임직원들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해외 실적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2조1180억 원의 매출과 209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분기 2110억 원의 영업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것.

하이닉스의 저력은 위기에 더욱 돋보였다. 세계 경기가 나빠지면서 반도체 업체들은 체력이 고갈됐다. 해외 경쟁사는 최근 2년 동안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하이닉스에게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었다.

하이닉스는 차세대 D램으로 불리는 DDR3 D램의 회로선폭을 4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급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고 연내 양산에 들어간다. 반도체의 회로선폭이 줄면 그만큼 효율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대만 일본 미국 등의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는 1년 이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4년 후발로 뛰어든 낸드플래시 사업도 시장 진입 3년 만에 점유율 3위에 올라섰다. 현재 41nm급 양산을 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32nm급 공정 개발도 마칠 예정이다.

최 부사장은 “하이닉스의 회생은 모든 임직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2012년까지 하이닉스를 인텔과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3위 반도체 회사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최진석 부사장은… ▼

― 1983년 삼성반도체 연구개발(R&D) 부문 근무
― 2000년 삼성반도체 300mm 웨이퍼 개발팀장
―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 R&D 부문 근무
― 2003년 하이닉스반도체 제조본부장
―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개발생산 총괄
― 2008년 하이닉스반도체 신기술제조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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