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시장을 움직이는가]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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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가 8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이 회사가 내놓은 살균기 ‘클리즈’를 들고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최근 스팀청소기뿐 아니라 다리미, 살균기,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등 소형가전 전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가 8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이 회사가 내놓은 살균기 ‘클리즈’를 들고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최근 스팀청소기뿐 아니라 다리미, 살균기,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등 소형가전 전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美 카펫 없애는 집 늘어 스팀청소기 수요 폭발
시장 개척하기도 힘들었지만‘여자가 웬 사업’ 편견깨기 고충
주부 눈높이 맞춰 홈쇼핑 대박,美시장 진출이어 中시장 ‘노크’

“남편이 어떤 사업을 하다 망했기에 당신이 이런 일을 합니까?”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는 회사 창업 초기, 재무 실사(實査)를 나왔던 한 정부기관 직원이 한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당시엔 회사 운영 자금이 부족해 정부 지원 사업이 있을 때마다 서류부터 집어넣었다. 한 대표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 기업인들을 ‘남편 대신 명의만 올려놓은 사장’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강했다”며 “되돌아보면 지난 10년간 시장 개척도 힘들었지만 ‘여자는 사업을 못한다’는 사회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7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 대표를 ‘2008년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48위로 꼽았다. 전 세계 여성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한국 여성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한국 공무원에게 ‘바지 사장’ 의혹까지 받았던 여성이 ‘세계적’ 기업인이 된 것이다.

8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경희생활과학 본사에서 만난 한경희 대표는 짧은 시간에 회사가 급성장한 배경에 대해서 “10년 동안 고객의 눈높이에서만 생각한 것이 결국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얼핏 생각하면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기업 창립에서 새로운 제품 출시까지 항상 주부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한경희생활과학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 집 담보 1억 원으로 사업 시작

한경희생활과학은 2001년 첫 제품을 만들며 본격적으로 소형가전업계에 진출했다. 출시 이후 국내 주부들을 사로잡은 ‘한경희 스팀청소기’의 시작이었다. 한 대표가 스팀청소기를 착안한 계기는 간단했다. 1998년 스팀을 내뿜는 다리미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다리미에다 긴 봉을 달고, 거기에 걸레를 붙이면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걸레질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게다가 스팀이 나와서 뜨거우면 청소 효과도 더욱 확실할 것 같았고요. 한국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이 ‘걸레질’이다 보니 확실히 시장에서 통할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1999년 교육부 사무관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기업 일에 매진했지만 시제품이 쉽게 개발되지 않았다. 가전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한 대표의 아이디어를 듣고 ‘개발기간 6개월에 총비용 5000만 원’이란 ‘견적’을 뽑아 줬지만 예측은 터무니없이 빗나갔다.

“처음에는 제가 살던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대출받고, 나중에는 시부모님 집까지 담보로 맡겼죠. 결국 3년 동안 연구하고 5억 원을 쓰고 나서야 첫 제품이 나오더군요.”

처음 나온 ‘한경희 스팀청소기 1호’는 한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못생기고 무거운’ 기계였다. 생각보다 길어진 제품개발 기간 동안 여러 기능을 계속 덧붙이다 보니 처음보다 무거워졌다. 디자인도 외부 업체에 맡기다 보니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못생긴’ 기계가 홈쇼핑 채널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새로운 유통 채널로 떠오르던 홈쇼핑과 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스팀청소기가 결합해 ‘화학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한 대표는 “당시의 성공 이후 2003년부터 해당 제품을 꾸준히 개량하고 있다”고 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대표 상품인 스팀청소기는 지금도 개량형이 나오고 있다.

○ 이제는 해외 진출이다

한경희 대표는 최근 2, 3년 동안 일 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미국 진출을 현장에서 챙겼고 올해는 중국 시장에 ‘다걸기(올인)’ 중이다. 그는 “지난해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만 2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미 전역에 방송되는 홈쇼핑 채널 QVC에서 제품을 팔았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에도 한경희 제품이 들어가고 있다. 한 대표는 “처음에는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미국 매출은 지난해 1000만 달러(약 117억 원)에 그쳤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500만 달러(약 292억 원)까지 올랐다. 이제 회사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셈이다. 미국 시장의 성공에는 ‘스팀청소기’라는 새로운 상품을 소개한 것 외에도, 맨바닥에서 생활하는 미국인이 많아진 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한 대표는 “최근 미국에서는 알레르기나 비염 때문에 카펫을 없애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며 “일반 바닥이면 스팀청소기가 훨씬 유용하다는 점을 광고한 것이 미국시장 판매 성장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머무르고 있는 중국에서는 어떤 아이템으로 시장에 도전할까.

“아직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배우는 수준이지만, 중국에서는 스팀다리미가 잘 팔릴 것 같더군요. 거의 모든 옷을 20초면 다릴 수 있으니 성가신 일을 싫어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것 같아요.”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한경희 대표는…

―1986년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86∼198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근무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

(MBA) 마케팅 석사, 이후 미국 래디슨호텔,

콩코드 무역회사 등 근무

―1998∼1999년 교육부 교육행정사무관

―1999년∼현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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