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김경익 판도라TV 대표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버텨라’ ‘공격하라’ 외쳤더니 흑자 반전
“침체 분위기에서도 공격경영 계속
올 1월 첫 흑자… 방문자수도 급증
동영상 서비스업의 ‘양용은’ 꿈꿔”

양용은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아시아 남자 최초로 골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날, 동영상 서비스업체 판도라TV의 김경익 대표(42)는 양용은의 우승 장면을 캡처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았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호하는 양용은, 고개를 푹 숙인 타이거 우즈의 모습. 사진 속 승자와 패자는 잔인할 정도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만큼 승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하려는 순간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휴대전화 속 대기화면은 타이거 우즈가 주인공이었다. 우즈의 고개 숙인 모습 위로 ‘질 때도 있다’라는 문구도 찍혀 있었다. 승부욕 넘치는 듯한 컴퓨터 바탕화면, 그 반대의 약해 보이는 휴대전화 대기화면. 그는 “전자가 ‘대외용’이라면 후자는 ‘개인용’”이라고 말했다.

“사업은 승부의 연속이죠.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고, 최후의 승자는 고집스럽게 버텨내는 자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안으로는 제 스스로 다독거리고 있답니다.”

판도라TV는 올해 1월 월별 매출에서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방문자 수도 갱신 중이다. 지난해 4월 이후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전 세계 순 방문자 수는 7월 한 달간 약 4900만 명으로 1년 전의 1600만 명에 비해 3배 증가했다. 여기에 고화질(HD) 동영상 서비스, 해외 사용자들을 위한 동영상 플레이어인 ‘KM플레이어’ 서비스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2004년 회사 설립 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를 탔다. 100여 명의 회사 직원들도 분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김 대표는 컴퓨터 화면 속 양용은보다 휴대전화 속 타이거 우즈를 더 떠올리려 하고 있다.

○ 양용은이 되기 위해 타이거 우즈를 보다

“7개나 되던 제 사무실 모니터를 1개로 줄였어요. 10년 넘게 입은 캐주얼 복장 대신 요즘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고 있고요. 우리는 회계상 흑자일지 몰라도 전체적으론 동영상 업계에 거품이 걷히는 중이랍니다.”

불과 2, 3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 동영상 사업은 손수제작물(UCC) 붐에 힘입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동영상과 UCC는 인터넷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겨졌고 여기저기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수익 모델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채 과열 경쟁이 일었고 올해 초부터 유명 동영상 사이트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동영상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김 대표가 믿었던 것은 어디서든 ‘공격적’인 1등은 살아남는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네트워크 확장에 온 힘을 쏟았다. 2년에 걸쳐 만든 HD 동영상 보기 서비스, 유료 콘텐츠 채널 ‘앳TV’ 등 새로운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더 빠른 네트워크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 2006년 인수한 동영상 플레이어 소프트웨어인 KM플레이어는 동영상을 재생하지 않고 작은 화면으로 미리 볼 수 있는 ‘앨범아트’ 기능을 넣어 해외용으로 밀었다. 그 결과 현재 세계에서 하루 평균 실행수 800만 건을 돌파했다.

“‘동영상, UCC가 한물갔다’는 말이 많이 들리곤 하죠. 시장은 어렵고, 유료화 모델은 부족한 반면 소비자들의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버텨낸다면 몇 년 후에는 진정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양용은처럼 손을 번쩍 들어올릴 수 있는 승자요.”

○ 김 대표의 ‘반 발’ 앞서가는 방법

그에게 현재 매출액을 묻자 “공개하기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올해 목표는 연간 매출 100억 원을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 최종 목표는 코스닥 상장. 판도라TV 사업 시작 5년 만에 처음으로 그려보는 장밋빛 미래이자 인터넷사업 경력을 다 합치면 13년 만의 희망찬 이야기인 셈이다. 1990년대 초 기계공학 석사 학위까지 따고 자동차 연구소에 입사한 그가 인터넷에 빠진 계기는 인터넷 자동차 카탈로그 때문이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모뎀을 통해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모터쇼 속 생생한 자동차 사진을 받아보게 됐다. 신형 자동차보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모니터 속 ‘넷스케이프’ 세상이었다.

연구소에 사표를 낸 1996년, 그는 직원 한 명 없이 혼자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차린 것은 ‘시작시스템즈’라는 회사였다. 사업을 시작한다는 뜻으로 ‘시작’이란 이름을 붙인 그는 각종 뉴스, 인터넷 정보들을 국내 PC통신에 알리는 사업을 했다. 이후 동영상, 플래시 등을 기반으로 한 e카드 사업으로 전환했다. 판도라TV는 세 번째 사업이었다. 그는 “검색 이후 인터넷을 지배할 것으로 개인미디어, 1인 블로그를 떠올렸다”며 “특히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동영상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널리 퍼질 것이라 예측했다”고 말했다. ‘반 발’ 앞서 간 그의 판단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직관을 믿는 편이에요. 방법은 ‘내가 소비자라면’이란 가정을 하는 것이랍니다. 13년째 사업을 하다 보니 절 믿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현재의 나를 가장 신뢰한답니다.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인터뷰하는 이 순간이겠죠.”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경익 대표 프로필

-1992년 2월 경희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4년 2월 경희대 대학원 기계공학 석사학위 취득

-1994년 1월 대우고등기술연구원(IAE) 자동차연구실 입사

-1996년 9월 인터넷 사업 시작. ㈜시작시스템즈 설립

-1998년 12월 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

-1999년 3월 ㈜레떼컴 오픈

-2004년 10월 ㈜판도라TV 설립

-2006년 12월 ‘2006년 IT 분야 올해의 인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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