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특목고같은 일반고’ 충북 세광고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평준화 압박에도 수준별 학습 고수

눈높이 맞춰주니 ‘방과후 열공’ 불꽃

교내숙식 ‘한빛학사반’ 면학분위기 주도

“같이 공부하면 도움돼 스스로 밤에 남아”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적한 구릉에 자리한 세광고등학교. 12일 밤 교내 ‘한빛학사반’ 문을 열자 시큼한 땀 냄새와 열기가 코끝을 찔렀다. 40명의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특목고 같은 실적=세광고는 올해 비수도권 평준화지역의 일반고 중에서 서울대에 가장 많은 16명(10학급)을 합격시켰다. 전국 평준화지역 일반고 중에는 서울 휘문고가 21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지만 휘문고는 세광고보다 6학급이 많다. 합격률은 세광고가 더 높은 셈이다.

서울대 외에 전국 의·치·한의대에 38명, 연세대에 35명, 고려대에 33명이 합격(중복합격 포함)했다. 미국 듀크대 1명, 일본공대국비유학생 5명도 있다.

세광고는 평준화 지역에 있는 사립고등학교로 입학생의 실력은 주변 고등학교와 비슷하다.

올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한 이병훈(19) 군은 “중학교 때 실력이었으면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중학교 때 400명 중 15등을 했었다.

▽학교안의 ‘야간학교’=세광고에는 ‘야간 학교’라고 불리는 별도의 방과 후 심화학습 프로그램이 있다. ‘한빛학사반(학년별 40명)’과 ‘심화반(학년별 30명)’이다.

학부모의 교육 수요와 실력에 맞춘 수준별 심화학습을 하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만든 프로그램이다.

평준화를 지향하던 지난 10년간에도 수월성과 수준별 교육은 절대양보할 수 없다며 교육청의 지침을 거부하고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김시용 교장은 “학교 밖으로 아이들을 빼앗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학사반과 심화반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춰 1주일에 2∼4회씩 통합논술, 수리논술, 구술면접, 언어, 영어, 수학 등의 심화과정 수업을 한다.

야간학교 학생들은 서로를 가르쳤다. 올해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하는 이진오(19) 군은 “서로에게 질문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차별한다고 불만을 얘기하는 학부모와 학생도 있다”며 “그러나 수준별로 가르치지 않으면 잘하는 학생이나 그보다 떨어지는 학생 모두가 결국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교사가 먼저 뭉쳤다=1989년 세광고 출신 교사들이 중심이 돼 ‘후배들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빈 교실을 기숙시설로 바꾸는 돈이 모자라 1990년 초에는 교실바닥에 스티로폼과 전기장판을 깔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켰다.

지금도 7명의 사감 교사들은 매주 1번씩 야간 당번을 맡는다. 아이들의 심화학습을 위해 별도의 교안을 만들어 강의하는 것은 물론 관련 분야의 유명한 대학교수와 외부 학원 강사를 찾아가 강의를 부탁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어주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4∼5년이 지나면서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한빛학사’ 시스템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충주 시내 사설 학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빛학사 진학반을 별도로 꾸릴 정도다.

졸업식이 열린 13일까지 최종 합격자를 챙긴 김선진 3학년 부장교사는 “350명 중 약 90%인 310여 명이 최소 4년제 대학은 진학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전에는 ‘우리가 피곤해지니 그만 좀 하라’던 주변 학교들이 지금은 배우겠다고 찾아 온다”며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년 40여 곳의 학교들이 한빛학사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세광고를 찾고 있다.

청주=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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