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법안 명칭과 피해자 인권

입력 2008-10-25 03:01수정 2009-09-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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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정성진 위원장, 황도수 위원(왼쪽부터)이 23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법안 명칭과 피해자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변영욱 기자
최진실법 “악플 사전차단 기대” “사회적 고통 재생산”

《최근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 명칭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여과 없이 사용돼 논란을 빚고 있다. ‘최진실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혜진예슬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대표적. 이들 법안 명칭은 일시에 사회적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지만 사자(死者)에 대한 또 다른 명예훼손이라는 지적과 함께 유족의 반발을 부르기도 한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3일 ‘법안 명칭과 피해자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열고 국민정서상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와 언론의 보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았다. 정성진(전 법무부 장관)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사회=황유성 독자서비스센터장》

자살원인 복합적이라 사용 곤란…美 ‘메건법’과 달라

피해자가 가해자 실명 확인할수 있게 법적장치 필요

언론도 유족에게 상처 주는 ‘법안 이름’ 사용 자제를

―피해자 이름을 딴 법안은 최근의 경향인 듯 한데요.

▽정성진 위원장=제헌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와 형법을 제정한 엄상섭 선생의 이름을 따 ‘유진오 헌법’이나 ‘엄상섭 형법’ 등 속칭(俗稱)으로 부른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법령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 전례는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법안을 제안한 의원의 이름이나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보편화한 듯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영미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이름을 법안 명칭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영철 위원=미국의 경우 ‘메건법’ ‘제시카 런스퍼드법’ 등 어린이 성범죄 및 납치 살해 등과 관련한 법안의 명칭에 피해자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정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문화적으로도 우리는 죽음의 기억을 떠올리기부터 싫어하는데다 죽은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꺼리는 전통적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황도수 위원=‘최진실법’이라고 하면 최진실이라는 스타가 어떤 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국민 누구든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인식시킬 수 있습니다. 이 법이 생기면 국민이 악성댓글(악플)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위반하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교육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사회적 반성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정서로 보아 부정적인 느낌이 앞서는 것은 사실입니다.

―법안에 피해자 이름을 붙이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정 위원장=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의 관심과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폐해도 만만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또 ‘최진실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법안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가족이 원치 않는 데다 불행한 기억을 환기해 사회적 고통을 재생산하는 부작용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윤 위원=‘최진실법’과 ‘메건법’은 성격이 다릅니다. ‘메건법’은 어린이 유괴 성폭행 살인 등 법안이 만들어진 배경이 분명한 반면 ‘최진실법’은 악플을 자살의 핵심 원인으로 규정하는 셈이 되니 차이가 납니다. 악플을 자살의 한 요인으로 추정해볼 수는 있겠지만 전부였는가 하는 의문이 남거든요. 우울증도 손꼽히고, 스타 시스템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개인적으로 어떤 고민을 안고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황 위원=스타의 충격적인 자살로 뜨겁게 달아오른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최진실 사건을 기회 삼아 인터넷상의 악플 위험성을 부각함으로써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법체계를 만들고 이를 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쉽게 수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법안에 피해자 이름을 써도 될까요.

▽정 위원장=우리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다만 ‘최진실법’과 비교해 ‘혜진예슬법’은 성격을 달리 한다고 봅니다. 비록 가슴이 아프더라도 다시는 그 같은 참담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해자를 명백하게 공개하고 엄격히 처벌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앞으로 가능할 때가 오리라 봅니다.

▽윤 위원=미국의 경우 공익과 관련해 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법안 명칭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면 내용을 쉽게 파악하도록 해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가족으로서는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일이겠지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인격권을 양보했다는 점에서 정서적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황 위원=피해자가 사망했으니 법률적으로는 성명권과 명예권의 주체가 없어진 상황입니다. 피해자의 권리까지 상속된다고 볼 수는 없으니 결국 가족의 명예권만 남는 셈입니다. 그래도 가족이 반대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사용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존중해야겠지요. 명예와 인격권이 손상되니 가족이 동의할 이유가 없고, 동의가 없다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최진실법’의 제정 의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정 위원장=명예훼손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수사결과에 대해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의 성격을 갖습니다. 반면 모욕죄는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습니다. 차제에 모욕도 반의사불벌죄로 바꿔 수사권 가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수사권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황 위원=모욕죄에 반의사불벌 규정을 넣어도 된다고 봅니다. 말보다 글을 통한 욕설이 더욱 심각한데도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천칭이 많이 기울어져 있으니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가해자는 마음대로 악플을 달 수 있어 자유방임 상태인데도 피해자는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균형을 맞추자면 피해자에게 가해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법안 명칭과 관련해 언론 보도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윤 위원=‘혜진예슬법’은 성격상 ‘메건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보이지만 ‘최진실법’은 우리 시스템에서 연예인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면에는 주목 효과를 노리는 상업적 의도가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정 위원장=국민정서나 법 정신의 원칙을 넘어서서 보도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편의를 위하고 흥미를 더한다 해도 피해자와 그 가족의 감정을 해치고 법 정신을 훼손한다면 사용하지 않도록 여론을 맞춰가야 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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