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37>‘대한민국 술박물관’ 박영국 관장

  • 입력 2008년 8월 4일 03시 02분


대한민국 술박물관을 세운 박영국 관장이 전시실에 섰다. 그저 술이 좋아서 술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게 어느덧 20년. 지금까지 모은 자료가 약 4만 점에 이른다. 김재명  기자
대한민국 술박물관을 세운 박영국 관장이 전시실에 섰다. 그저 술이 좋아서 술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게 어느덧 20년. 지금까지 모은 자료가 약 4만 점에 이른다. 김재명 기자
20년 동안 모은 술술술… 한 바퀴 둘러보니 캬∼

007소주, 다이야소주, 이젠벡맥주….

생소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이름이지만 한때 국내에서 생산됐던 소주와 맥주의 제품명이다.

물론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하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신문에 광고가 실릴 정도로 제법 이름이 있던 술이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대한민국 술박물관’에 가면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술을 직접 만날 수 있다.

○ “즐거울 때 마시는 술이 명주(名酒)”

박영국(53) 관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수원에서 주류 도매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박물관을 세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술이 좋아서 이것저것 모으기 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한 동생 박영덕(49) 씨와 함께 일하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전국의 고물상을 뒤지고 시골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구했다. 20년 가까이 모은 물건이 약 4만 점에 이른다.

형제는 부모님의 고향인 안성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2004년 술박물관을 열었다.

처음 이름은 그냥 술박물관이었다. 개관한 뒤 얼마 안 돼 한 시인이 박물관을 찾았다. 그는 “대한민국 이름을 붙여도 아깝지 않다”고 칭찬했다.

그 뒤로 술박물관 앞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박 관장은 “한국에서 술은 산업적인 면만 강조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외면당했다”며 “희귀한 자료가 많아 대학 교수, 주류 회사 사장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술박물관은 별도의 입장료도 없다. 대신 2년 전 박물관 옆에 식당을 열었다. 박 관장의 부인이 직접 음식을 만든다.

박 관장은 “돈벌 생각이면 이걸(박물관) 어떻게 하겠느냐”며 “밥 안 사먹어도 되니까 누구나 편하게 오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술박물관을 세웠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박 관장은 “좋은 술을 만들고 마실 수 있는 공간에서 세계 술 박람회나 전국주당대회 같은 행사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좋은 술은 값비싼 술도, 오래된 술도 아니다. 바로 가장 즐거울 때 마시는 술”이라고 덧붙였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 만화 ‘식객’의 무대

4500m² 크기의 박물관 안팎에는 약 1만8000점의 자료가 전시 중이다. 야외에는 전통술을 빚을 수 있는 부뚜막 시설과 발효실 숙성실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또 주먹만 한 크기부터 어른 2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까지 다양한 술항아리가 있다.

문화재급 자료도 많다. 조선시대 술 제조 역사를 기록한 ‘조선주조사’, 주도를 알려주는 ‘향음주례’, 술 제조법이 적혀 있는 ‘규중세화’ 등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자료다.

금주령이 내려졌던 구한말 한 농민이 여동생의 혼례를 앞두고 “부스러기 쌀로 술을 빚게 해 달라”며 군수에게 낸 탄원서도 눈에 띈다.

전시실 가운데에 위치한 소줏고리(술을 내리는 도구)는 만화 ‘식객’의 소재로 쓰였다.

허영만 화백이 직접 이곳을 다녀간 뒤 ‘소주의 눈물’편을 통해 소줏고리와 술박물관을 그려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물론 술박물관답게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위스키 와인 맥주 등도 전시 중이다.

이제는 대기업이 된 주류 회사들의 초창기 제품, 팔도의 특색이 살아 있는 향토 소주도 있다.

수영복 모델이 등장하는 달력, 신문 방송 광고, 만화책, 공중전화카드 같은 판촉물까지 다양하다.

시대극을 찍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 관장은 “전시를 못하고 창고에 보관 중인 자료만도 2만 점이 넘는다”며 “인복이 많아 전국 각지에서 자료를 구해다 주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