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쉰들러 리스트’의 공장

  • 입력 2008년 6월 11일 03시 01분


이스라엘 건축가 즈비 헤케르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공장 용지에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예술창작 억압을 되새기는 현대미술관 공간을 설계했다. 사진 제공 즈비 헤케르 스튜디오
이스라엘 건축가 즈비 헤케르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공장 용지에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예술창작 억압을 되새기는 현대미술관 공간을 설계했다. 사진 제공 즈비 헤케르 스튜디오
유대인 노역 공장 살려 현대미술관으로 활용

이스라엘 건축가 즈비 헤케르가 출생지인 폴란드 크라쿠프에 새 현대미술관을 짓습니다. 나선형 벽면의 아파트 등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미를 추구한 헤케르의 전작에 비해 심심하게 보이는 디자인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의 공장 건물입니다. 볼품없는 모양새의 낡은 공장 건물을 그대로 남기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겠죠.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공장의 주인이었던 독일인 오스카어 신들러는 1000여 명의 유대인을 고용해 아우슈비츠 대학살로부터 구해냈습니다.

1993년 유대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흥행을 걱정한 제작사의 반대 때문에 만들어지지 못할 뻔했던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생애 첫 감독상 등 그해 아카데미 영화제 7개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며 오열하는 ‘쉰들러’(리엄 니슨)의 모습이 뭉클했던 작품입니다.

헤케르는 이 프로젝트가 특히 현대미술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현대미술은 이 기념비적인 공간에 전혀 어색한 주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박해하듯 현대미술을 탄압했습니다. 수많은 화가와 작가, 음악가, 건축가들이 강제 수용되고 작품을 몰수당했죠. 이 미술관이 예술과 창작의 자유가 탄압받았던 어두운 과거를 되새기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중앙의 옛 공장 건물은 업무와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쓰입니다. 공장을 중심으로 갤러리가 대지 전체를 빙 둘러쌉니다. 헤케르는 “방패의 이미지로 갤러리를 배치했다”며 “신들러의 공장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헤케르는 나치가 몰수했던 작품들의 기획전을 첫 프로그램으로 제안했습니다. 역사적 공간이 흔적에 그치지 않고 건축가에 의해 새로운 가치를 얻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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