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29>파주 화폐박물관 박용문-정옥희부부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액면가 500억짜리 돈 보셨나요?”

건물 곳곳에 돈이 가득한 곳. 이곳의 주인은 종일 돈을 만지며 지내왔고 지금은 구경꾼에게 ‘돈 자랑’을 하고 있다.

경기 파주시 ‘화폐박물관’. 박물관을 세운 박용문(52) 씨는 현직 은행지점장으로 부인 정옥희(47) 씨가 박물관장이자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남편이 돈을 수집하는 동안 집에 월급을 한 푼도 가져오지 않아 고생했다는 정 관장은 “점차 남편의 별난 취미에 동화되면서 잘나가던 한학(漢學) 강사 자리를 포기하고 지금의 직함을 얻어 행복하다”고 했다.

○ 동서고금의 화폐 모아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 박물관에 전시된 화폐는 3800여 점. 국내외는 물론 동서고금의 지폐와 주화들이다.

중국에서 기원전 175년에 만들었다는 반량 주화, 로마와 비잔틴 제국에서 만든 주화도 있다.

행운의 화폐로 알려진 2달러는 제작 연도별로 6가지가 모두 전시돼 있다.

26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씨가 본격적으로 돈을 모은 것은 10여 년 전.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일대에 조성된 헤이리에 들어와 주거와 문화활동을 병행하기로 결심한 직후다.

은행원 인맥을 통해 주요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세계 각국의 주화를 우선 모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은 물론 중국과 인도, 유럽 각국 등 출장 때마다 그 나라 고금의 화폐를 수집했다.

현재 발행되는 유로, 달러화도 전시돼 있는데 색상의 특징이나 한국 화폐와 어떤 점이 비슷한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화폐로 보는 문화

한국 화폐는 인물 위주로 만들어지지만 이 박물관에 와 보면 세계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벨로루시 지폐에는 곰,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인도네시아 지폐에는 오랑우탄, 아일랜드 주화에는 오징어, 크로아티아 주화에는 포도나무, 네팔 지폐에는 야크가 그려져 있다.

이들 나라의 화폐 주인공은 그 나라에 풍부한 자연 속 소재다.

1, 5, 10, 20 등의 단위가 아닌 2분의 1리알(오만), 2·1/2훌덴(네덜란드령 앤틸리스)으로 발행되는 희귀 단위의 화폐도 있다.

앞면은 가로로 인쇄되고 뒷면은 세로로 인쇄된 이탈리아 1000리라 화폐는 멋을 강조한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면 화폐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세계를 식민지화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절을 반영하듯, 젊은 시절부터 황혼기에 이르기까지 여왕의 변모를 화폐를 통해 볼 수 있다.

○ 돈으로 배우는 세상

가장 단위가 높은 화폐는 무엇일까.

정답은 1993년에 발행된 ‘500억 디나르’. 당시 치열한 내전으로 살인적 물가를 기록하던 유고슬라비아의 고통을 반영하는 지폐다.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발행된 지폐 속 인물은 외국인이라는 착각이 든다.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화폐 도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서양 선진국을 통해 인물화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가나의 화폐 단위가 페세와(Pesewa)와 세디(Cedi)라는 사실도 배울 수 있다.

일본군과 미군이 전쟁 때 점령지역에서 자국 화폐 대신 사용하던 ‘군표’도 연도별로 전시돼 있다.

국제 스포츠 행사나 국가원수 방문에 즈음해 발행된 국내외 기념주화를 보면 당시 사회의 단면을 알 수 있게 된다.

정 관장은 “요즘은 모두가 돈을 좋아하지만 그 역사를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돈의 역사를 배워 그 가치를 제대로 배우자는 취지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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