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욕망의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립니다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일곱 살 때 지었다고 하는 ‘소산폐대산 원근지부동(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이라는 시가 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가깝고 먼 것이 같지 않다’는 뜻인데, 일곱 살 아이 눈에 비친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현상을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글을 곱씹어 읽다 보면 소탐대실하는 우리네 삶이 보이는 것 같아 되새겨 볼수록 여운이 남는다.

태산같이 큰 산도 당장 눈앞에 있는 작은 산에 가릴 수밖에 없는 것은, 내 안에 숨어있는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의 욕심을 잠재우지 않는 한 결코 작은 산이 작은 산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권력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람에게 원칙은 그저 대의명분에 불과하고 재물을 탐내는 사람에게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이익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재물과 권력 외에도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단지 이것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홍수로 불어난 흙탕물처럼 모든 것을 삼키고자 하는 우리네 욕심 때문일 것이다.

맑은 강바닥을 보려고 하면 우선 흙탕물을 가라앉혀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가라앉히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많은 이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욕심을 잠재우지 않는 한 우리 마음은 흙탕물이 흐르는 강처럼, 홍수로 범람한 강처럼 포악하게 모든 것을 휩쓸어 갈 것이다. 강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존재가 인간이기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의 부활대축일 전에 40일간 회개의 시간을 보낸다. 인간의 욕망은 늘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생명이 강한 잎과 같아서 늘 다듬고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려 안달하고, 더 많이 먹으려 남의 것을 탐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보면서, 원래 있었어야 했을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살펴보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발걸음을 되돌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은 산은 작게 볼 수 있고 큰 산은 크게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부활의 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무엇을 담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혼돈스럽다면, 잠깐 멈춰서서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지 않도록 말이다.

최성우 신부·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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