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情으로 풍성한 시골 폐교 효도잔치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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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군 원통의 한 작은 폐교에 자리한 ‘글라렛 재가복지센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10월 마지막 주일이면 홀로 외롭게 살고 계시는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을 효도잔치를 연다.

작년 10월 가을 효도 잔칫날 오전 6시. 군불을 넣었지만 아직 한기가 느껴지는 경당에서 아침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홉 명의 식구, 서울에서 온 안토니오 친구 부부들, 그리고 인천 검단에서 온 토마네 식구. 그 찬미의 노래에 평화와 기쁨이 묻어난다. 막바지 추수만을 앞둔 동네는 새벽 어스름 속에 아직 고요하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식구들이 밖으로 나오자 삽살개 누리, 마루, 나리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짖어댄다. 식구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며 어르신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바오로는 숙달된 솜씨로 2개의 가마솥에 불을 지핀다. 그 전날, 월학3리 아주머니들이 다듬어 준비해 놓은 소머리와 흑돼지를 약한 불로 계속 삶아야 한다. 마당에서는 소머리 국밥을 위해 고기를 썰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밥을 한다. 잘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편육을 만들고, 구이용 숯불을 피운다. 주방에서는 해물파전과 잡채 등 잔치음식 준비로 부산하다. 모세가 준비하고 있는 잔치 무대 노래방에서 신나는 삼태기 메들리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신이 난 요세피나 자매가 일하다 말고 고무장갑 낀 손을 흔들며 관광버스 춤을 춘다. 옆집 최 씨 아주머니의 걸쭉한 입 재담과 함께 작은 주방이 웃음소리로 들썩인다.

신남, 기린, 천도리, 용대리로 나갔던 차량 봉사자들이 한복으로 곱게 단장하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바오로와 정수가 어르신들 가슴에 예쁜 꽃을 달아 드리며 잔치 자리로 안내한다. 술과 떡,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잔칫상이 차려지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동네 농악팀의 농악 한마당이 펼쳐지면서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마이크를 잡은 동네 반장 김 씨가 능숙한 솜씨로 어르신들을 춤과 노래 마당으로 이끌며 신명과 흥을 돋운다.

해마다 봄과 가을 경로잔치 때면, 비록 폐교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렇게 풍성한 잔치를 마련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식구들은 ‘야훼 이레’ 즉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말씀의 섭리와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한다.

김병진 글라렛 재가복지센터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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