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경북 영양여고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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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북 영양군 영양여고 도서관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들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 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도서관에 개성 있게 꾸민 자신만의 좌석을 갖고 있다. 학교 측의 교육환경 개선 노력으로 7년 전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수도권 학생들까지 유학을 오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영양=이권효 기자
16일 경북 영양군 영양여고 도서관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들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 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도서관에 개성 있게 꾸민 자신만의 좌석을 갖고 있다. 학교 측의 교육환경 개선 노력으로 7년 전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수도권 학생들까지 유학을 오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영양=이권효 기자
“영양여고가 참 좋아졌어요. 애들이 공부를 잘해야 우리 동네에도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영양여고까지 3km의 산길을 따라 차를 몰던 택시 운전사는 영양여고 얘기가 나오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양군은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두메산골’. 채 2만 명이 안 되는 인구에 고추 농사가 주력 산업이다.

1974년 개교한 영양여고(영양읍 동부리)는 지역인구 감소와 함께 학생 수가 줄어 2000년에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폐교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옆 영양여중에서도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도시로 빠져나갔다. 학교 전체에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16일 오후 찾은 이 학교에서 이런 몇 년 전 상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270여 명의 이 학교 학생 중 개인 사정이 있는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은 252석 규모인 도서관의 ‘개인 좌석’에서 자정 무렵까지 공부한다. 216명은 아예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졸업할 때까지는 내 자리니까 마음껏 자리를 꾸며요. 내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공부도 더 잘되고요.” 이날 도서관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렇게 자랑했다.

이 학교의 대학 진학률도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2000년 이전 이 학교 졸업생 중 한 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20여 명. 하지만 지난해에는 90명의 졸업생 중 4년제 대학 76명, 전문대 12명 등 총 88명이 대학에 합격했다. 4년제 대학 입학생 중 30여 명은 서울의 명문대와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다.

영양여고가 이렇게 바뀐 계기는 2001년 3월 박순복(58) 교장의 부임이었다.

부임 후 그가 처음 한 일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상담’하는 것이었다. 모든 학생과 1, 2시간씩 만나 대화하면서 가정환경과 적성, 진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상담을 끝낸 박 교장은 재단 측과 협의해 도서관을 대폭 확충했다.

박 교장은 “꿈만 가진 학생들에게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부임한 첫해 졸업생 2명이 각각 서울대 사회과학부와 원광대 한의학과에 진학하면서 학생들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1980년대에 서울대 가정학과에 한 명이 입학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5년에는 서울대 진학생이 3명으로 늘었다.

교사들의 열의도 달아올랐다.

수학 담당 조창해(51) 교사는 “교무실이 항상 학생 도서실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부족해 제자들이 손해 보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밤늦게까지 교재 연구에 몰두하는 교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공부하기 좋은 학교’라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올해에는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의 61개 중학교에서 입학생들이 몰려왔다.

어머니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인숙(44) 씨는 2005년 12월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울산에서 영양으로 이사했다. 딸은 영양여고, 아들은 영양중학교에 다닌다.

박 씨는 “이 학교에 딸을 입학시킨 이후 학부모로서 특별히 걱정할 게 없어졌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영양으로 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양으로 ‘유학’ 와 있는 3학년 한도우(18) 양은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고, 주변 환경도 쾌적해 마음 편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학교의 최대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영양=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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