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名병원]<7>美 MD앤더슨 암센터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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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에 사용되는 양성자는 암세포만을 골라 공격하는 ‘저격수’로 불린다. 올해 MD앤더슨 암센터에 설치된 양성자 치료실은 ‘꿈의 방사선 치료실’이다. 사진 제공 MD앤더슨 암센터
암 치료에 사용되는 양성자는 암세포만을 골라 공격하는 ‘저격수’로 불린다. 올해 MD앤더슨 암센터에 설치된 양성자 치료실은 ‘꿈의 방사선 치료실’이다. 사진 제공 MD앤더슨 암센터
《미국 대학 순위 평가로 이름난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선정한 암 치료 분야 최우수 대학병원(최근 7년간 1위 4차례), 이병철 정세영 박정구 전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회장 등 한국 경제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찾았던 병원, 1년 예산 약 21조 원에 연구개발 예산만 연간 2조8000억 원대…. 이제 어지간한 한국인도 미국 텍사스주립대 산하 MD앤더슨 암센터가 암 치료 분야의 세계 최고 병원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쟁쟁한 종합병원이 수두룩한 미국에서 무엇이 이 병원을 최고로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텍사스 주 휴스턴으로 떠났다.》

○ 치료는 접수순이 아니다

1일 둘러본 구내에는 유난히 ‘암 극복 환자’의 사진이 눈에 많이 띄었다. 메리 샤키(54·여) 씨도 그중 한 명이다. 2001년 췌장암 판정을 받은 뒤 그가 완치되는 과정에는 MD앤더슨의 독특한 치료문화와 경쟁력이 녹아 있다.

그는 처음엔 췌장염으로 알았지만 조직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암 진단을 받았다. 그가 MD앤더슨의 전문의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한국에도 국립암센터 같은 수준 높은 병원이 있지만 암 판정 후 의사 대면까지는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한다.

토머스 버크 행정담당 부원장은 “암 환자의 증세에 따라 입원 순서가 달라진다. 생명을 다루는 사안을 놓고 접수를 늦게 했다고 치료도 늦어지는 일은 없다”고 했다. 물론 유방암, 결장암처럼 발생빈도가 높은 암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의 치료를 권유받기도 한다.

샤키 씨는 초기에는 암세포가 간으로 연결되는 동맥 옆에 위치해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다.

샤키 씨는 소화기 암 전문의의 조언대로 항암제 2종 투약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결국 종양의 크기가 작아졌고 수술의에게서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대성공. 현재는 약물치료 전문의가 처방한 3종류의 항암제를 복용하고 있다.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판 확보를 위해서다.

MD앤더슨의 경쟁력은 환자 1명 치료에 다수의 의사가 개입해 ‘자기 분야’ 치료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으로 MD앤더슨의 2인자 자리에 오른 종양내과 전문의 홍완기 박사는 “환자 1명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때로는 의사 30명이 모이는 일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통념상 의사는 ‘자기 환자’를 동료에게 넘기는 일이 흔치 않은 것으로 돼 있다. 왜 MD앤더슨에서는 이런 협조 진료가 가능할까.

홍 박사는 “의사와 연구자들이 연구, 치료 성과를 놓고 혼신의 자기경쟁을 하지만 ‘성과에 따른 차등급여 지급은 없다’는 원칙이 존재한다”며 협진의 비결을 공개했다.

자기 환자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다수의 환자 치료가 가능하고 이를 통한 경제적 보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경쟁원칙이 적어도 생사의 기로에 선 암 환자만을 상대하는 MD앤더슨에서는 비켜 간다는 뜻이다.

○ 세부전공 암 전문의 다수 포진

또 다른 경쟁력은 몸집 키우기가 부른 전문화에 있었다.

MD앤더슨에서 근무하는 암 전문의와 연구 인력은 모두 1300명 선. 몸집 불리기에 성공한 탓에 이곳에는 자궁암 담당의사만 버크 부원장을 포함해 15명에 이른다. 자궁암 일반이 아니라 자궁암의 특정분야만 세부적으로 다루는 의사 3, 4명이 경험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간다는 뜻이다.

미국 내 다른 종합병원도 이 정도의 전문성은 갖추지 않았을까. 기자가 시카고 지역의 한 유명 종합병원 이름을 대며 묻자 버크 부원장은 “그 병원 사정은 내가 안다”며 “자궁암 전문의가 2, 3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암은 생존확률이 50%에 그친다는 점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MD앤더슨은 유독 환자와의 교감을 중시한다고 했다. 1600명에 이르는, 또 상당수가 암 극복환자라는 이 병원의 자원봉사자는 발견-진단-치료-극복 혹은 사망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날 들러본 병원 내 환자휴게실에서 할아버지 자원봉사자 2명과 마주쳤다. 이 병원 의사였지만 암에 걸렸던 존 루크 박사는 92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밝은 표정이었고 이 대학병원 치대교수였다는 D J 밀샙 박사는 전립샘암 등 4가지 암과 싸워 모두 이긴 장본인이다.

밀샙 박사는 “커피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환자와 가족들을 섬긴다. 내가 겪은 암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이 놓아 버린 희망의 끈을 되찾아주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휴스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저격수’ 양성자 암세포만 콕찍어 공격해 부작용 최소화… ‘꿈의 치료법’ 떠올라▼

MD앤더슨 암센터가 최근 역점을 두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방사선 속의 양성자(proton·프로톤)를 증폭해 이를 암 치료에 사용하는 방안이다. 특급 저격수처럼 암 부위에만 타격을 가한다고 해서 ‘꿈의 방사선 치료’라고도 불리는 첨단 치료법이다.

올해 텍사스 주 휴스턴에 1억2500만 달러(약 1186억 원)를 들여 양성자 치료실을 완성한 MD앤더슨 암센터는 최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제임스 콕스 방사선치료팀장은 “전통적인 방사선 치료의 가장 큰 단점은 치료 과정에서 혈관이 파열되거나 암세포 주변 조직에 피해를 주는 부작용이었다”며 “그러나 양성자 치료는 정밀폭격처럼 암 부위에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양성자 치료는 기존 방사선 치료에선 어려움을 겪었던 안(眼)암은 물론 폐암, 간암, 자궁경부암처럼 주변 조직이 민감한 암 치료에 큰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소아암과 싸우는 어린이들에게도 희소식이라는 것이 콕스 팀장의 설명. 그는 “어린이들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기존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암세포만 공격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암세포가 이미 다른 부위로 광범하게 전이된 환자에게는 양성자 치료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 따라서 MD앤더슨 암센터는 해당 환자가 양성자 치료에 적절한지를 여러 명의 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

양성자 치료는 기존의 치료방법에 비해 비용이 좀 더 들어간다. 그러나 재발 위험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양성자 치료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 콕스 팀장의 설명이다.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콕스 팀장은 “한국 병원들과도 협조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한국인이 진료 받으려면 검사 - 초기치료에만 최대 4000만원 내야▼

12월 초 현재 약 20명의 한국 국적 환자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건너와 센터가 위치한 텍사스 주 휴스턴 지역의 아파트를 빌려서 머물면서 치료주기(주 1, 2회∼월 1, 2회)에 따라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가입한 의료보험이 없는 만큼 치료비 부담이 대단히 크다. 센터 측은 “실제 치료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 실시하는 정밀검사 및 초기 방문치료만을 위해 6000∼4만5000달러(550만∼4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무보험 한국인 환자는 이 액수만큼 사전에 현금을 납부해야 한다.

암센터를 이용하는 한국 환자들은 “한국에도 좋은 병원이 있지만 대기기간이 길고 의사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로 꼽고 있다.

새로운 암 치료 연구를 주도하는 곳인 만큼 임상시험 참가도 관심거리다. 미국 내 일부 대학병원과 달리 ‘미국인 우선’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센터측은 “환자의 성별, 나이, 암 종류, 치료경과 등에 따라 선정 여부가 달라진다. 1차 진료를 받은 암 환자를 대상으로 센터가 상담을 거쳐 임상치료자를 최종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1, 2회 병원 방문 등 의료진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 만큼 한국에 있는 환자가 임상시험 대상이 되기는 현실적으로는 제약이 크다.

휴스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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