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엄마의 딸은 다시 딸의 엄마가 되고… ‘귀향’

입력 2006-09-22 02:59수정 2009-10-0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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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은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 어머니가 돌아오고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귀’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 제공 스폰지
“그 세월을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았나 몰라.”

다시 만난 엄마에게 딸은 이렇게 말한다. 미워하고 외면했던 엄마인데, 사실은 한시도 엄마를 잊은 적이 없었나 보다. 딸 또한 자신의 엄마와 똑같이 ‘딸을 위해 사는 엄마’가 되어 있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 서로 닮았다.

21일 개봉한 영화 ‘귀향’(15세 이상)은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바치는 헌사.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는 동안 늘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는 알모도바르는 “나는 삶의 원류이자 이야기의 시작인 모성(母性)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에서 실제 고향인 라만차로 돌아갔다. 어머니에게로, 고향으로, 이 영화는 인간이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출연한 다섯 명의 여배우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감독은 각본상을 받았다.

무능력한 남편, 사춘기에 접어든 딸 파울라(요아나 코보)와 함께 마드리드에 사는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스)는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는 억척 여성. 어느 날 파울라가 “친 딸이 아니니까 괜찮다”며 성폭행하려는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이 생기고 라이문다는 뒤처리에 동분서주한다. 한편 라이문다의 동생 솔레(롤라 두에냐스)는 남편이 바람나 도망간 뒤 혼자 불법 미용실을 운영하며 지내는데 이모의 장례식 때문에 고향인 라만차에 다녀오다가 엄마(카르멘 마우라)의 유령을 만난다. 솔레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를 러시아 노숙자라고 소개하며 미용실에서 같이 지낸다. 하지만 엄마는 정작 라이문다에게는 나타나지 못하고 그녀 주위를 맴돌며 눈물짓는데, 마침내 라이문다와 엄마가 만나게 되면서 라이문다의 엄청난 비밀이 밝혀진다.

‘귀향’은 남자들이 보면 재미 없을지도 모를, 여자들끼리 보면 더 좋을 영화다.

여기에 남자는 없다. 아니, ‘진짜 남자’는 없고 여자들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나쁜 남자’만 있다. 엄마와 라이문다와 솔레 등 모녀의 공통점은 ‘남자 복이 지지리도 없다’는 점. 3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이면서 이웃 아우구스티나 등 도움을 주는 주변사람도 다 여자다. 모정과 더불어 여성들 사이의 연대감이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라이문다는 동생의 미용실 화장실에 갔다가 “예전에 엄마가 뀌던 방귀 냄새가 난다”고 주장한다. 사춘기 이후 엄마를 멀리 했다지만 방귀 냄새까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던 것. 결국 ‘모든 것을 털어 놓아도 다 이해해 줄 사람, 나도 모르게 항상 그리워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엄마 뿐’ 이라는, 여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영화는 코믹 터치를 가미해 재치 있게 풀어 놓는다. 죽은 엄마가 돌아온다는 판타지적 설정도 능청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표현돼 어색하지 않다.

항상 눈 아래쪽까지 아이라인을 짙게 그려 그 큰 눈이 더 깊어 보이는 페넬로페 크루스는 스페인 대표 여배우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공동 수상이 이해가 갈 만 큼 다른 여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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