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으랏차차… 여자가 되고 말거야

입력 2006-08-25 03:00수정 2009-10-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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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처럼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오동구(류덕환·오른쪽)의 천하장사 도전기 ‘천하장사 마돈나’. 사진 제공 사이더스 FNH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하는 씨름 이야기. 스타는 한 명도 없고 감독 이름도 낯설다. 별 볼일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씨름 기술 중 ‘뒤집기’를 제일 좋아하는 이 소년은 관객의 편견을 뒤집어 버린다.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마돈나의 노래 ‘라이크 어 버진’을 흥얼거리며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는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시작된다. 권투선수 출신의 폭력적인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사는 주인공 오동구(류덕환)는 마돈나 같은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구사나기 쓰요시) 앞에 당당하게 여자로 서고 싶다. 그러나 꿈에서 그를 만나 “선생님 저 멘스 시작했어요!”라고 말하곤 좋아하다가 깨고 나선 훌쩍거리며 몽정한 팬티를 빨아야 하는 잔인한 현실.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던 동구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씨름부에 가입하고 고교 천하장사에 도전한다.

그의 아이콘인 마돈나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부와 성공을 거머쥔, 적극적인 성취의 삶을 살아간 여성으로 평가받는다. 동구는 마돈나처럼 되기 위해 가장 남성적인 존재인 천하장사가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인다.

성적 소수자를 다룬 소재는 새롭지만 내용은 새롭지 않다. 아무리 소질이 있다 해도 씨름대회에 처음 출전한 동구가 승승장구하는 것이나 동구를 무시하던 씨름부 주장과의 갈등, 그리고 그 해소는 관객의 예상을 그대로 따라간다. 결말에는 꽤 위트를 가미했지만, 씨름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몇몇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많다.

영화를 빛낸 것은 배우들의 힘. “촬영 전에는 살찌우느라 죽었고 촬영 중에는 여성의 감성을 알아내느라, 씨름하느라 죽었고 지금은 살 빼느라 죽는 중”이라는 류덕환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소년병으로 나왔던 배우로 영화를 위해 체중을 27kg 불렸다. 동그랗고 뽀얗고 통통한 그가 중국풍 원피스를 입고 “나 장만옥 같아”라고 말하거나 남몰래 립스틱을 바르고 씨름복 위의 맨살이 부끄러워 젖꼭지에 밴드를 붙이고 보이는 새초롬한 표정, 미묘한 손짓은 남성의 몸 속에 숨겨진 여성의 감성을 귀엽게 나타낸다. 일본어 선생님 앞에 서면 펼쳐지는 동구의 상상 신이 특히 압권.

동구 아버지로 나오는 술에 찌든 낙오자의 모습인 김윤석은 측은하면서도 짜증이 나도록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했다. 집 나간 엄마 역의 이상아가 동구와 밥상을 놓고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남들 보기에 좋고 예쁜 것, 아무 소용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멋있게 사는 게 진짜”라고 말하는 장면은, 미안하지만 한때 하이틴 스타였다가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그의 실제 모습과 겹치면서 진솔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와 동구가 모자에서 모녀로 변하는 과정도 가슴 뭉클하다.

4대의 카메라를 동원한 후반부의 씨름대회 장면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이만기 이봉걸 강호동의 시대 이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씨름의 재미를 생각나게 해 준다.

형제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라고 강조하는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은 “사람을 수단화하거나 해치지 않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처럼 비대중적인 소재를 사용해, 보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코미디를 빚어냈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동구의 그 후 삶은 힘들지만 행복할 것 같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니까. 31일 개봉.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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