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곰치]인사동 개울에 발 담글 날 올까

  • 입력 2006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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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시간이 좀 났다.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걸어 보았다. 인사동 골목길도 걸어 보았다.

“정전사고가 나면 물이 끊긴다”는 말도 들었고, 그래서 “청계천을 ‘누워 있는 분수’라고들 하지만,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음이 상쾌해졌다. 왜일까.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소리 때문이었다. 청계천 복원에 대해 여러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소리가 너무 좋아 그 순간만큼은 잊어버렸다.

왜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을까. 수도관을 통과해 왔더라도 흐르는 물은, 흐른다는 것 자체로 살아 있다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 있다’라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것, 흐르는 물은 기쁨에 겨워 있었다. 나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이라 물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청계천 물은 왜 기뻐하며 흐르고 있을까. 그 답은 수도관에 있었다. 한강에서 퍼 올린 물이 대형 수도관을 통과하고 청계천의 4개 지점(청계광장, 삼각동, 동대문, 성북천 하류)에서 밖으로 터져 나온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캄캄함, 공기가 전혀 없는 숨 막힘, 서로를 빠개 버릴 것 같은 물과 쇠의 압박이 수도관이다. 11km의 관로에서 고통 받던 물이 마침내 놓여 난 것이다. 공포에서 풀려난 물이라 즐거운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사동 골목길을 걸었던 것은, 술자리에 놓고 나온 목도리를 찾으러 가면서다. 목도리는 술집에 있지 않았다. 어디서 흘렸을까. 지율 스님과 관련된 목도리이기 때문에 꼭 찾고 싶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날의 숙취가 몸과 마음에 남은 상태에서 인사동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청년 시절, 이 인사동에서 꽤 자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때에 비해 인사동은 좋아졌다. 보도의 돌이 어슷비슷하게 섬세하게 놓여 있어 발바닥으로 돌 밟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주말에는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고 들었다. 내가 운전자라면 평일에도 인사동 골목길로는 차를 밀어 넣지 않을 테다. 다행히 차들은 서행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운전자들이 스스로 깨달아 1년 내내 차 없는 거리가 될 거야” 하고 자위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나도 모르게 앞이 핑 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나는 진심으로 인사동 골목길이 슬프게 느껴졌다. 아, 이 길 어디에도 개울이 없구나…. 후미진 곳을 찾아가 펑펑 울고 싶어졌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울고 싶어진다.

서울시의 강북 뉴타운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양주택마을(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에 있는 214채의 주택단지로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측 대표단 방문에 대비해 전시용 주택단지 조성을 지시해 만들어졌음·편집자)을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동 골목길을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겠기에 개울이 없는 인사동이 마냥 슬프다.

복원이란 말보다 회복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누구나 공감할 가장 감동적인 회복은 ‘건강의 회복’이다. 아픈 이가 병석에서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서울 곳곳에서 회복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근현대사를 정신없이 통과하면서 잃어버린, 만물을 향한 생명 감성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는 병들어 있다. 그러나 절대 불치병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김곰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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