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25>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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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속았다. 내 반드시 그 흉악한 늙은이를 잡아 거짓말한 입을 부수어 놓으리라!”

패왕은 그렇게 씨근거리며 인마를 돌려 늪지를 빠져나오고 나니 벌써 짧은 해가 뉘엿했다. 겨우 바른 길을 찾아 동성(東城)을 바라고 달렸으나, 추운 겨울 날 하루 종일 늪지를 헤매며 얼고 떤 인마를 이끌고 밤새워 달릴 수는 없었다. 동성 못 미친 마을에 인마를 멈추게 하고, 민가를 털어 주린 배를 채우게 하는 한편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게 하였다.

하지만 그 농부에게 속아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그 한나절이 패왕의 최후를 더욱 앞당겼다.

그날 새벽이었다. 패왕과 그의 인마가 아직 곤한 잠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크게 함성이 일었다. 그 사이 회수를 건넌 관영의 기마대가 패왕의 자취를 쫓아 그곳까지 이른 것이었다.

깊은 잠에서 놀라 깬 장졸들과 함께 말에 오른 패왕은 힘을 다해 길을 앗아 동쪽으로 내달렸다. 곧 날이 훤히 밝아오며 저만치 동성이 보였다. 뒤쫓는 함성도 멀어져 패왕이 가만히 뒤돌아보니 회수를 건넜던 백여 기(騎) 가운데 겨우 스물여덟 기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 강수(江水=장강)만 건너고 보자. 강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 고단함과 욕스러움을 몇 배로 적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모두 이 오늘을 옛말 삼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패왕이 그렇게 군사들을 북돋우며 다시 동남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사이 관영이 쳐둔 그물은 질기고도 촘촘했다. 갑자기 동성 안에서 수많은 인마가 뛰쳐나와 패왕의 길을 막았다. 전날 패왕이 늪지를 헤매고 있을 때 동쪽으로 먼저 앞질러간 관영의 기마대 한 갈래였다. 바로 낭중기(郎中騎) 양희(楊喜)와 왕예(王예)가 이끄는 6백 기로서, 아무리 더듬어도 패왕이 지나간 흔적이 없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때맞춰 달려 나온 길이었다.

그들을 보자 겁을 모르는 패왕도 가슴이 섬뜩했다. 6백 기가 수천 기로 보이면서, 전과 달리 뚫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말을 멈추고 앞을 노려보고만 있는데, 다시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다. 패왕이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관영의 본대가 부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오늘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는 어렵겠다.’

패왕의 머릿속에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파국의 예감이 이끌어낸 분발일까, 패왕이 문득 뒤따르던 스물여덟 기를 돌아보며 외치듯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종횡한 지 어느덧 여덟 해가 되었다. 그동안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차천지망아 비전지죄야]. 내 오늘 죽을 각오로 그대들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 세 가지로 적 대군을 이겨 보이겠다. 반드시 적의 에움을 흩어 버리고, 적의 장수를 베어 죽이며, 적의 깃발을 찍어 쓰러뜨려, 그대들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못한 죄가 아님을 알려 주고자 한다.”

그리고 남은 스물여덟 기를 일곱 기씩 네 갈래로 나누어 각기 한 방향을 잡게 하였다. 그사이 한나라의 5천 기마대는 산등성이에 의지한 패왕의 군사들을 겹겹이 에워싸고 천천히 죄어 왔다. 그걸 본 패왕이 한나라 기마대로 뒤덮여 있는 산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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