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2>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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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래도 처음 한동안 패왕 항우가 앞선 3만 초군의 돌격은 이전이나 다름없는 위력을 나타냈다. 한번 패왕의 기세를 꺾어본 적이 있는 관영과 조참이 장졸들을 격려하며 패왕과 마주쳐 나갔으나 달포 전의 진성(陳城) 아래와는 달랐다. 5만 전군(前軍)을 등 뒤로 한군의 2만 정병이 힘을 다해 막아도 위기감으로 달아오른 초군의 거센 공격을 오래 버텨 내지 못했다.

관영과 조참이 이끌던 선봉이 무너지자 저절로 뚫린 한나라 전군(前軍) 진문 속으로 3만의 초군이 패왕과 함께 뛰어들었다. 오래잖아 한군이 좌우로 점점 넓게 갈라지며 그 사이로 훤한 길 같은 것이 열렸다. 그 길을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로 내닫는 저희 편 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리매와 계포가 각기 목소리를 높여 이끌고 있는 군사들을 휘몰았다.

“무엇들 하는가? 우리도 모두 대왕을 따라 한군을 토막 내고 짓밟아 버리자. 이번에는 반드시 한왕 유방을 사로잡아 우리 대왕의 걱정거리를 덜어드리자!”

그러자 남아 있던 초군 5만이 두 갈래로 나뉘어 다시 한나라 전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패왕을 뒤쫓아 적진 한가운데에 이른 뒤 좌우로 방향을 바꾸어 치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리되면 패왕 때문에 좌우로 갈라진 한나라 전군은 다시 전후로 쪼개져 결과적으로는 네 토막이 나게 된다. 그렇게 잘게 토막 난 한군을 토끼 몰 듯 하나하나 짓밟아 가다 보면 싸움의 형세는 그대로 결판나기 마련이었다.

몰리던 적의 전군은 저희 중군에로 달아나게 되고, 그들의 겁과 혼란도 고스란히 중군에로 옮아간다. 그리하여 중군마저 무너지게 되면 그때는 아무리 두꺼운 후군이 있다 해도 대세를 돌이키기는 어려워진다. 잘해야 사람과 물자를 덜 잃고 패군(敗軍)을 수습하는 것이 이미 패왕에게 전군과 중군이 무너진 뒤의 상대편 후군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일이었다.

그날 해하의 싸움도 처음 한동안은 그렇게 발전해 가는 듯했다. 조참과 관영이 이끌던 선봉이 무너지고 패왕에게 진문이 돌파 당하자 또다시 수수의 참패를 되풀이하게 되는가 싶어 한신도 가슴이 섬뜩했다. 이끌고 있던 장수들을 모조리 불러내 패왕의 돌진을 가로막게 하며, 부장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이끄는 좌우군(左右軍)이 초군의 옆구리를 찌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신이 기다리는 좌우군보다 종리매와 계포가 이끈 초군이 먼저 한나라 전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후군처럼 남아 있던 둘이 패왕의 승세를 알아보고 남은 5만 군사를 모두 휘몰아 패왕을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패왕을 따라 한군을 쪼개 가고 있던 초나라 장졸들은 더욱 기세가 올라 전보다 사납게 한군을 밀어붙였다.

‘잘못되었구나. 무언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자칫하면 크게 낭패를 보겠구나….’

앞뒤가 서로를 북돋아 가며 8만의 초군이 한 덩어리가 되다시피 밀고 드는 것을 보고 한신은 잠시 눈앞이 아뜩했다.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애써 억누르며 장졸들을 호령해 어느새 눈앞으로 밀려든 초군을 맞이하게 했다.

하지만 한풀 기세가 꺾여서인지 한군은 차츰 허둥대며 밀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가면 오래잖아 전군(前軍)이 돌파 당해 패왕이 중군으로 뛰어들 길을 내줄 판이었다. 그럴 때 토막 나 내몰리던 한나라 전군이 중군으로 쫓겨 들며 공포와 혼란을 옮기게 되면, 싸움은 초군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신이 기다리던 변화가 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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