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원규]지리산 문수골의 불청객

  • 입력 2005년 12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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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수골의 외딴집에도 첫눈이 내렸다. 첫눈답지 않은 폭설이니 일단은 고립이다. 고립은 고립이되 외롭거나 소외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홀로 높게 서는 것’이니, 고립의 즐거움이나 평화로움은 입산자만의 전유물일지도 모른다. 먹이를 찾아 민가에 내려온 개똥지빠귀며 까치들 때문에 산중의 이 아침이 잠시 소란스럽다. 앞마당에선 개밥을 노리는 ‘대담한’ 까치들과 식량을 지키려는 강아지들이 아라리 난장을 벌이고 있다.

산짐승들은 또 어떻게 겨울을 날지, 특히 아직 어린 지리산 반달곰들은 동면에 잘 들었는지 걱정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의 길이 있고, 짐승은 또 짐승의 길이 있지 않겠는가. 다만 길은 그야말로 소통의 길이어야 하는데 자동차의 길이 사람의 길을 막고, 사람의 길이 짐승의 길을 막고 있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11월에는 바로 우리 집 뒤의 밤나무 밭에서 어린 반달곰이 올무에 걸려 죽고 말았다. 밤밭 주인이 멧돼지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북한에서 온 반달곰이 걸려든 것이다.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이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겨울이 오기 전에 올무며 덫의 제거 작업을 해 왔지만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겨울에 특히 폭설이 내리면 집은 누구에게나 아늑한 둥지가 된다. 집과 둥지라는 말에는 왠지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 길이 모두에게 길이어야 하듯이 사람의 집과 새들의 둥지와 짐승의 집 또한 그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집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고, 꼭 필요에 의해서 지어져야 한다. 까치들이 나무가 아닌 전봇대 위에 쇠못과 철사를 물어다 둥지를 짓는다면 까치와 더불어 사람에게도 불행이 되듯이, 사람의 집 또한 아무데나 막 짓는 게 아니다.

옛 사람들은 집을 지어도 함부로 짓지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절묘한 조화에 기반한 집을 지었다. 도시에서는 집이 모자라니 터만 있으면 집을 짓는 게 미덕일 수 있겠지만, 친자연적인 시골에서는 오히려 빈집들이 많으니 새로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쩌면 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리산을 둘러보면 참으로 흉물스러운 건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산의 형세에 걸맞지 않은 호텔과 모텔뿐만이 아니라 별장이나 전원주택 또한 참으로 꼴불견이 많다. 모두 필요에 의해서 지은 것들이라지만 스스로 ‘감옥’이 되어 끝내 지리산의 생태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산중의 외딴집인 우리 집 앞에도 커다란 별장이 하나 들어섰는데, 참으로 가관이다. 처음에는 반가웠으나 집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천연기념물인 고라니가 물을 먹으러 오던 곳에 세워진 국적불명의 3층 건물. 이 별장은 마치 교도소나 정신병원같이 백색의 사각형 건물로서 위압적인 포즈로 최근에야 완성되었다. 운조루가 있는 아름다운 오미리의 풍광과 지리산 문수골의 반달곰과는 상충되는 이미지의 별장이 되고 말았다.

앞산과 뒷산의 기울기에 맞는 상생의 아늑한 집, 바람의 길과 짐승의 길을 막지 않고 햇빛과 달빛이 고이는 아름다운 집이 그립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은 둥지요, 둥지는 집이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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