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2005 과학기술인]<4>양덕준 ㈜레인콤 대표이사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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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MP3플레이어의 대표작 ‘아이리버’를 탄생시킨 양덕준 레인콤 사장은 “꼭 해야 하는데 폭풍우가 분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실패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한국 MP3플레이어의 대표작 ‘아이리버’를 탄생시킨 양덕준 레인콤 사장은 “꼭 해야 하는데 폭풍우가 분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실패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청소년 시절에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었어요.”

양덕준(54) 레인콤 사장에게 어린 시절 꿈에 대해 물었더니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MP3플레이어의 대명사 ‘아이리버’를 만든 이 답지 않게 어린 시절 그의 꿈은 ‘허무맹랑’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헬리콥터를 만들고 싶어 동네 고철을 다 모았고, SF소설을 읽다 우주선을 만들려고 했다. 미군 부대의 쓰레기더미에서 나온 만화책을 보다 스파이더맨을 꿈꾸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진지했어요. 스파이더맨이 되기 위해서는 응용화학과가 가장 그럴듯해 보였죠. 당시 국내에 딱 두 곳 있었는데 서울대와 영남대였어요. 서울대에 떨어진 뒤 영남대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 들어와서는 노는 데 탐닉했다”며 스파이더맨과의 이별을 담담하게 말했다. 졸업할 무렵에는 ‘예쁜 여자가 많고 회사 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화장품 회사에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그는 군대에서 마침내 진짜 꿈을 만났다.

○ “트랜지스터 컴퓨터가 내 운명 바꿔”

양 사장은 미군 부대에서 복무했다. 그곳에 진공관 컴퓨터가 있었다. 어느 날 부대에 트랜지스터 컴퓨터 한 대가 들어왔다. 교실만한 진공관 컴퓨터가 탁자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우주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 후 친구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삼성반도체(현재 삼성전자)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지원해 20년을 그곳에서 근무했다. 한국 반도체의 탄생부터 번영까지 역사를 함께했다. 회사를 나올 무렵에는 해외영업 담당 임원까지 올라갔다.

헬리콥터에서 우주선, 스파이더맨, 반중력 물질 등으로 이어진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자유’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론 하늘을, 때론 우주를, 때론 빌딩숲을 자유롭게 다니기를 꿈꿨다. 틀에 박히는 것을 거부하던 그가 음악의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디지털 감성을 창조한 MP3플레이어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난 참 인생을 랜덤(random)하게 살았어요. 그때그때 끌리는 것에 열심히 파고들고 그러다 보니 길을 찾은 셈이죠. 다만 그 길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임원이 되고서 자유롭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고, 그런 마음으로 창업도 했습니다.”

직원 7명으로 시작한 레인콤은 처음에는 미국의 소닉블루라는 회사에 MP3플레이어를 납품했다. 1년 뒤 위기가 찾아왔다. 소닉블루가 대금결제를 미룬 것이다. 양 사장은 고민 끝에 자체 브랜드를 내놓기로 결심했다. 빈손으로 시작한 일이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인터넷의 강’을 뜻하는 아이리버가 탄생했다.

몇 달 동안 영업이 안 돼 회사를 ‘말아먹는’ 것 아닌가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이노디자인과 협력해 MP3플레이어를 ‘첨단 패션상품’으로 탈바꿈시킨 아이리버는 결국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들며 MP3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됐다. 레인콤은 지난해 4540억 원의 매출에 435억 원의 흑자를 냈다. 아이리버는 현재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하며 애플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로 세계시장 석권

그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애플, 삼성전자 등 국내외 대기업이 MP3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격전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위기는 기회다. 그는 신제품 ‘유텐(U10)’을 보여주면서 대기업의 공세를 이겨낼 무기라고 소개했다. 네모나고 큰 화면도 독특하고 음성 녹음, 동영상 재생, 게임 등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제품과 개념이 확 달라진 것이다.

그는 “MP3플레이어의 사활은 앞으로 디지털 융합(컨버전스)과 문화의 창조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콘텐츠에 쉽게 접속할 것인가, 새로운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가가 화두라는 것이다. 그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걸 가장 잘 안다”고 자신했다. 레인콤이 앞으로 내놓을 제품도 새로운 콘셉트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큰 회사나 돈보다는 제대로 된 브랜드를 하나 만드는 것이 진짜 목표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브랜드, 조르조 아르마니처럼 친근하면서도 창의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청소년에게 한마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최선을 다하라. 살면서 처음부터 하나의 길만 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인생을 항해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길을 갈 수도 있지만 어느 길에서든 최선을 다해 몰두해야 프로가 될 수 있다.

●양덕준 사장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만들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다. 197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년간 근무했다. 1999년 벤처기업 레인콤을 창립해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를 만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2003년 ‘대한민국 멀티미디어대상 정보통신부장관상’을 받았고, 현재 ‘차세대PC산업협회 초대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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