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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色이다]밝은 회색의 조형물엔 품격이 살아있다

입력 2005-03-17 15:47업데이트 2009-10-0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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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많은 산에 오르면 차분해진다.

도시에서보다 산에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유는 일상을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있겠지만, 단조로운 색조의 영향도 크다. 요란한 원색을 자랑하는 도시 환경은 눈을 어지럽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데 반해 회색 바위는 색깔이 주는 스트레스를 해방시킨다.

훌륭한 건축 재료인 회색 화강암은 기와집과 조화를 이뤄 차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돌덩어리를 공들여 쌓은 축대와 담장은 자연미와 인공미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오랫동안 색깔을 잊어버리고 형태와 정신을 감내해 온 석탑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비장미가 있다.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에 회색을 적용하면 우리의 시각은 색깔보다 부피에 집중하기 때문에 공간감이 살아난다. 회색 공간은 객관성을 강조해 절제와 배려의 심성을 갖게 만든다. 조용한 회색 건축이나 조형물이 단아한 지성적 이미지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복잡한 구조물을 밝은 회색으로 도색하면 빛과 색조의 농담에 따라 첨단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킨다. 자기주장이 약한 회색에 원색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온도감이나 무게감이 정밀하게 나타나 고급스러운 품격을 표현할 수도 있다.

시멘트로 쌓아올린 회색 도시나 소속이 불분명한 회색분자처럼 회색은 권태롭고 공허하며 모호하면서도 특성 없는 색으로 비난 받기 쉽다. 그러나 회색은 빛의 강약에 따라 미묘한 느낌을 연출한다. 색깔이 주는 부담을 벗어나 질감과 형태를 강조하는 회색은 다른 색을 드러나 보이도록 하면서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앉는다. 그래서 배경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비움의 정신을 부각시키는 회색은 그 어떤 색보다 시각적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좋다.

회색은 세상의 모든 색을 포용한 검정과 모든 색을 포기한 하양의 중간에 놓인다. 회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욕을 상실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분명하게 지켜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성기혁 경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khsung@kyungb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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