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Right]3부<2>황경식 교수-강명자 원장 부부

1995년 꽃마을한방병원을 공익재단으로 사회에 기증하고 무보수 이사장과 월급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교수(오른쪽)와 한의사 강명자 원장.-박주일 기자

“뉴 라이트는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문화운동이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도층 인사들이 부채의식을 갖고 사회 공헌을 의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황경식(黃璟植·58)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강명자(姜明孜·57) 꽃마을한방병원 원장 부부. 이들은 1995년 100억 원의 자산을 정리해 각자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딴 명경의료재단을 세운 뒤 이를 국가에 헌납했다. 이후 두 사람은 무급 이사장과 봉급쟁이 원장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꽃마을한방병원과 경주 분원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수익 중 재투자분을 제외한 모든 수익을 각종 공익사업에 쓰고 있다.

공익재단 설립은 황 교수의 철학적 신념과 강 원장의 한의학 현대화에 대한 열정이 어우러진 결실. 황 교수는 현대 자유주의 철학의 대가로 꼽히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197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1979∼80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하버드대에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가 직접 롤스를 사사하기도 했다.

“롤스는 제 학문의 사표일 뿐 아니라 인생의 길에서도 이정표와 같은 존재입니다. 롤스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였지만 인간의 타고난 재능도 사회 공동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회 공익을 중요시했습니다. 저희 부부도 사회로부터 ‘복’과 ‘재물’을 나눠받아 이 자리에 온 만큼 사회에 이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원장은 한의학 여성박사 1호다.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그는 1985년 ‘한방 여성 불임증 치료실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강남에 개원한 뒤 ‘삼신할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불임치료의 권위자로 인정을 받았다.

“사실 돈은 엄청나게 벌었지만 한방의 원리를 서양과학의 시각에서 규명해내는 데는 개인병원으로 한계가 많았어요. 정부 지원도 일부 받아 꽃마을한방병원을 세우면서 의사 숫자가 3명에서 30명으로 늘어나 한방과 양방 합동진료가 가능해졌고 공동연구를 벌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꽃마을한방병원은 뉴 라이트 운동의 모태이기도 하다. 꽃마을한방병원 세미나실에서는 매월 두 번째 화요일마다 자유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이화회(二火會)’ 모임이 열린다.

신지호(申志鎬) 자유주의연대 대표와 박세일(朴世逸) 한나라당 의원 등 뉴 라이트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인물들이 바로 이화회 출신.

황 교수는 “이화회에도 여러 갈래의 자유주의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뉴 라이트가 표방하는 노선에 대해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면서 뉴 라이트 운동이 정치 세력화하는 데 경계심을 보였다. 그는 “미국의 뉴 라이트처럼 합리적 이론과 논리를 개발하고 장기적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특히 지역감정과 각종 인맥에 휘둘려온 정치의 공공성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공익개념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左)편향’ 문제에 대한 그의 처방도 명쾌하다.

“한국정치가 좌편향됐다면 그것은 현 정부의 탓이 아니라 ‘올드 라이트’가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뉴 라이트가 비리와 불합리로 얼룩진 올드 라이트와 결별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확산에 주력한다면 한국정치의 좌편향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명경의료재단은 의료사업과 문화사업 두 가지의 공익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의료사업은 복지기관에 대한 연 70회 이상의 무료 진료, 일반인 대상의 연 120회의 무료 건강강좌 등이며 문화사업은 1997년부터 매년 세계적 석학을 초청해 순회강연을 여는 한국철학회의 다산기념 철학강좌 후원, 서울대 철학과 최고 논문에 수여하는 명경논문상 상금 지원, 경희대 한의학발전기금 지원 등이다.

두 사람은 “돈을 아무리 벌어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세 딸들에게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저마다의 재능을 찾아 나서도록 한 것이 우리가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이라고 웃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황경식 교수는▼

△1947년 대구 출생

△1982년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1979∼1980년 미국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1980∼1985년 동국대 철학과 교수

△1991∼2002년 한국 사회윤리학회장

△1985∼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

△2004∼현재 철학연구회 회장

▼강명자 원장은▼

△1948년 서울 출생

△1985년 경희대 한의과 대학원 졸업(한의학 박사)

△1986∼1990년 대전대 한의대 교수

△1984∼1996년 강명자 한의원 원장

△2000∼현재 경희대 한의과대학/가톨릭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2000∼현재 한방병원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