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권혁범]환경은 이제 뒷전인가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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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적 시민단체들이 ‘반(反)노무현 정부’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11월 10일 출범한 ‘환경비상시국회의’는 현 사태를 ‘환경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1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반환경정책 철회와 환경문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게 된 것은 사필귀정이다. 집권 이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각종 정책은 대통령, 정부 및 여권 엘리트의 머릿속에 ‘녹색’은 애당초 없었음을 보여 준다. 핵폐기장 문제로 발생한 부안사태, 고속철과 연관된 천성산 터널 문제, 새만금 간척사업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정부의 갈팡질팡 대응은 결국 비전을 상실한 퇴행적 결정으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비상시국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겠는가.

▼시민단체 환경비상시국 선언▼

최근 크고 작은 반환경적 정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시국회의가 열거한 것만 해도 수도권 내 공장 신설 증설 허용, 골프장 230개 건설 및 규제 완화, 토지수용권과 개발이익을 보장하는 기업도시특별법 제정 추진, 경유 상용차 배출가스 기준 유예조치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판 뉴딜 정책은 그 압권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탈규제 바람이 정부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경제가 어렵다는,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을 돌봐야 한다는 구호 하에 정부 엘리트, 여야 정치인, 재벌, 대기업 산하 연구소, 경제학자에서 대다수 언론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경기 부양’만을 목소리 높여 강조하고 있다. 공정한 시장 규칙을 만들기 위한 약간의 공공적 제약마저 ‘반시장’, ‘좌파적 발상’으로 매도된다. 당연히 ‘녹색 마인드’는 안중에도 없다.

환경을 문서상의 수사로만 생각하는 정책 결정 집단들은 이 기회에 반환경적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기세다(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속에서도 그것이 야기할 환경 파괴적인 결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 아닌가?). 그나마 어렵게 쌓아 온 환경 인프라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는 그 위험한 증후다.

여론주도층은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과거에 귀 따갑게 들었던 구호들이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들 입에서 퍼져 나간다. 무한경쟁시대의 국가경쟁력 강화, 2만달러 시대 등의 부국강병적 언설이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질타하며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암묵적 합의를 쉽게 넓힌다.

지구의 생태적 용량을 고려할 때 개발독재형 산업화나 선진국형 산업화 모두 ‘지속 불가능한’ 삶의 양식이라는 게 환경론의 상식이다.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성장주의, 반환경적인 정책으로는 인간 자체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다른 생명들간의 유기적 관계망이 파괴될 때 영혼도 마음도 몸도 황폐해진다(개별적 이기적 차원의 대응이지만 도처의 ‘참살이’ 바람도 이 고리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라도 깨닫고 있다는 증거다).

또 그 파괴의 결과로 개발업자들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불평등은 심화된다는 점이다. 1997년 말 경제위기 후 본격화된 ‘경제 살리기’ 정책에 의해 과연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가. 그 부담은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 영세산업, 여성, 노인, 신빈곤층, 이주노동자 및 실업자에게 고스란히 넘겨졌고 중산층마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살려낸 경제’는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를 되레 파괴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계해야▼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 위기’의 담론에는 ‘경제성장 숭배’의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그것은 경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이를 중립적이고 공평무사한 가치로 전제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제인가. 민주주의와 규제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안달하는 경제는 사람, 생명, 자연과의 관계, 부자와 빈자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경제성장 숭배라는 이 시대의 우상은 이러한 질문들을 인식론 입구에서부터 봉쇄하고 있다. 그 문밖에서 환경은 파괴되고 주변부 사람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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