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주홍글씨’ 를 보고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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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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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중인 영화 ‘주홍글씨’는 인간의 원죄에 관한 창세기의 인용구로 시작된다. 살인사건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성모상, 고백성사 장면 등은 이 영화를 인간의 죄악과 징벌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기훈(한석규)이 아내 뱃속의 아기를 초음파로 본 뒤 한 말처럼, 우리 마음속의 ‘에일리언 같은’ 감정, 즉 죄의식을 떠올렸다.

심리학자 콜버그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은 일련의 발달 과정을 겪는다. 도덕성의 가장 초보적 수준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선, 불쾌감을 주는 것은 악으로 인지하면서 단지 벌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권위자가 정해주는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과 타인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길인가 하는 것이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은 자신의 양심의 체계를 만들고 보편적인 윤리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즉 도덕적 판단은 외부로부터의 금지와 조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에서 그 판단의 기구를 내적인 것으로 가져오는 쪽으로 진화한다. ‘규칙을 위한 규칙’이라는 엄격한 체계로부터, 모순과 딜레마를 인정하고 보다 유연한 가운데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어릴 때 가졌던 믿음과 달리 모든 선한 행동이 상을 받거나 모든 잘못이 벌을 받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행과 악행은 그냥 묻혀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랄수록 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목소리, 즉 죄의식이라는 것을 안다. 죄의식으로 가득 찬 마음은 자신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게 하고, 세상의 모든 빛을 가리며, 두려움에 잠 못 들게 하고, 트렁크 안의 기훈과 가희(이은주)가 그러했듯 마음을 둘로 나누어 서로 반목하게 한다.

죄의식을 만드는 주체는 어린 시절 부모의 금지로부터 만들어진 마음의 한 부분인 ‘초자아’이다. 잘못에 대한 벌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마음 안에서 오는 것이며, 어쩌면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는 것으로 이미 대가는 주어진다. 고백성사라는 것 역시 죄를 사하는 것보다는 죄의식을 사하는 의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주홍글씨’는 총성으로 시작해 총성으로 끝난다. 이 불륜 스토리의 핵심은 ‘그 총성이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것 같다. 영화 초반에 외부에서 날아온 것처럼 보이는 총알이 사실은 내부로부터 발사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총은 이 영화에서 기훈의 욕망과 초자아의 징벌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가 총을 조립하며 시간을 재는 행동은, 죄의식을 유발하는 욕망을 조절하고 동시에 초자아의 감시에서 오는 불안을 줄이려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표면은 ‘배우자를 배신하면 이런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설파하며 피로써 저주를 풀고 죗값을 치르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피로 범벅된 죄 많은 몸을 재빨리 훈장 달린 제복으로 감싸듯, 욕망이 발화하는 지점을 상세하게 살펴보지 않은 채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보는 이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던져 줄 만한 내적 동기들을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서 처리해 버린 탓에, 공들여 만들었으나 전해지는 임팩트는 별로 없다. 기훈의 대사대로 ‘8초만 조용히’ 했었다면 더 큰 울림이 가능했을 텐데, 그래서 좀 아쉽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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