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최근 회고록 낸 한국肝연구재단 김정룡 이사장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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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70년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펴낸 한국간연구재단 김정룡 이사장은 “모름지기 의사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환자에게는 친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재단 사무실에서 회고록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전영한기자
최근 70년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펴낸 한국간연구재단 김정룡 이사장은 “모름지기 의사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환자에게는 친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재단 사무실에서 회고록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전영한기자
이름보다 ‘간(肝)박사’로 더 알려진 사람. 세계 최초로 B형 간염예방백신을 개발한 사람. 그러면서도 ‘술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명약’이라며 음주를 즐기는 사람…. 한국간연구재단의 김정룡(金丁龍·70) 이사장이다.

그가 최근 고희(古稀)를 맞아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회고록 ‘학문의 길은 의지의 외길(백수사 간)’을 펴냈다.

평생 연구를 계속해 온 그가 ‘최근’ 공을 들인 분야는 C형 간염 예방백신 개발. 99년 11월 세계 최초로 C형 간염 바이러스 단백질을 혈청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한 지 5년 여 지난 지금 백신 개발은 어느 정도 진척됐을까.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다. “요즘 회의가 들기도 해요. 정말 개발할 수 있을까 하는….” C형 간염바이러스 혈청이 워낙 적은데다 바이러스가 변이가 잦은 RNA형 단백질이기 때문에 인공배양도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 백신을 만들지 못한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RNA형 단백질이다. 그는 “그렇다고 희망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보기만 해도 간암을 짚어낸다는 명의다. 몸을 자세히 보면 간의 상태를 알 수 있단다.

“간이 굳어지면 얼굴이 녹슨 것 같고 거무죽죽하며 기름기가 흐르지 않아요. 더 나빠지면 혀가 빨갛게 되고 반짝거리죠. 미세한 혈관이 피부 밖으로 보이기 시작해요. 가슴 위쪽에는 거미줄처럼 혈관이 쫙 퍼지죠.”

묵묵히 간 연구에만 전념했던 그도 한때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역면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불똥이 ‘엉뚱하게’ 그에게까지 튀었다. 90년 정연씨의 진단서를 발급했던 의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이회창씨와 40년 지기다. 나이도 같고 서로 의기가 통해 젊은 시절부터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거나 골프를 했다.

그는 진단서에 ‘언더웨이트(Under-weight)’라고 썼다. “내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떳떳하게 검찰조사에 응했습니다. 의학자로서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Underweight’, 즉 저체중은 분명한 병역면제 사유에 해당합니다. 결코 병역기피가 아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 병원에 찾아온 정연씨는 병은 없어 보였지만 볼품없이 깡말랐고, 간호사실에 데리고 가서 체중을 재어 보니 40kg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그는 ‘금주회(金酒會)’라는, ‘술 먹는 모임’까지 만들 정도로 술을 즐긴다. 금주회는 매주 금요일 오후 6∼7시 제자 40∼50명과 함께 최신 의학 경향과 연구결과들을 발표하고 토론한 뒤, 뒤풀이 술자리를 갖는 모임이다. 한두 차례 맥주가 돌고 나면 으레 폭탄주가 이어진다. 그는 고희의 나이지만 지금도 폭탄주 5잔은 거뜬하다. “과거 10잔 이상 마시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죠.” 그가 젊었을 때는 앉아서 양주 세 병을 간단히 비우는 ‘두주불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간박사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휴간일(休肝日)을 지키세요. 3일 연속으로 술을 마시면 그 뒤 4일간은 한 방울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겁니다. 술은 매일 찔끔찔끔 먹는 게 더 위험합니다. 다만 B형 또는 C형 간염 환자나 술 마신 다음날 몸에 무리가 가는 사람은 술을 절제해야겠죠.”

그는 제자들에게 늘 ‘밥벌이 의사’가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특히 대학에서 명성을 쌓고 난 뒤 개업해 돈을 버는 의사를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대학에서 베푸는 유형무형의 각종 지원에는 후배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라는 의무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의학자라면 환자에게는 친절하되 자신에겐 엄격해야 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간 분야의 권위자가 된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는 것입니다.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혹시 자신에게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환자에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김정룡 이사장은▼

△1935년 함경남도 삼수군 출생

△1955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59년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1971∼2000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

△1987∼1989년 한국간연구회 회장

△1988∼1992년 아시아태평양소화기병학회 회장

△1989∼1992년 대한내과학회 이사장

△1985∼2000년 서울대 의대 간연구소장

△현재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 의대 간연구소 특별연구원

△저서 ‘소화기계 질환’ ‘간박사가 들려주는 간병 이야기’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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