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거미숲’을 보고

  • 입력 2004년 9월 9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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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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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중인 영화 ‘거미숲’이 던지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기억에 관한 사유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부터가 왜곡된 것일까?

영화에는 병원에서 나온 강민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강민은 사고로 기억이 조각나버렸는데, 어떻게 아파트 위치와 열쇠번호를 생각해 냈을까?

그것은 아파트 위치와 열쇠번호가 강민의 감정과는 독립된, 중립적 기억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정신적 상처와 관련된 기억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모두 잊혀지거나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잠재해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식의 표면으로 밀려들어온다. 영화 속에는 강민의 무의식 속 기억의 정체를 짐작케 하는 세 가지의 열쇠들이 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무의식의 통로들이다.

첫째 열쇠는 강민 주변의 세 여인들이다. 그들은 셋 다 강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보아’ 준다. 강민에게 여자란 애정을 주고받는 존재가 아니라 모성적인 구원의 여신들이다. 강민은 아마 어린 시절 어머니와 관련된 상처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됐는지도 모른다. 어떤 대인관계의 특성이 자꾸 반복되거나 특정한 유형의 파트너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자기도 모르게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다. 마치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갈등이 유령처럼 자리 잡아 주인을 조종하는 것 같다고 할까.

둘째 열쇠는 강민이 연인 수영에게 청혼하며 준 인형으로 두 아이의 모습을 재현하는 장면이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숲 장면은 인형의 이미지를 따라 들어간 강민의 기억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놀이로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 인형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대개 일상에서 자신이 겪은 것에 판타지를 결합한 것을 재연한다. 예컨대 성적으로 학대 받은 아이는 인형으로 그 장면을 연출하거나 성적인 주제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더 이상 인형놀이를 하지 않는 성인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영화나 소설들을 반복해서 보고 탐닉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특정 영화나 소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깊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셋째 열쇠는 사진이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기억들은 주로 시각적인 이미지나 청각, 후각, 미각 등으로 뇌에 저장되며 어떤 단서가 주어졌을 때 의식 위로 떠오른다. 영화 속 사진들은 언어의 매개를 통하지 않은 기억의 존재를 말해준다. 이미지는 언어보다 가변적이며 왜곡에 취약하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에 대한 특별한 감정적 반응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아주 모호하지만 자꾸 떠오르는 어떤 영상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그것과 관련된 어떤 기억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신호이다.

‘거미숲’의 모든 내러티브를 논리에 맞게 짜 맞추려는 시도는 부질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마음의 긴장을 좀 풀고, 자연스러운 자기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과도 조우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얻는 기쁨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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